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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08

2000년

게임개발이라는 분야에서 우리는 최고가 되고자했다.
IT 버블이 우리에게 가져다준것은 생애 첫 월급뿐만이 아니라, 신대륙으로의 여행을 통해 더 먼저 더 높은 깃발을 꼽고 싶은 무의식적 도전욕구였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의 해안에 처음 상륙하며 느꼈을 부듯함과 두근거림 만큼, 언제나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어 도저히 기존의 사고로는 이해할 수 없던 경이롭고도 무자비한 새로움 그 ‘미지’라는 존재를 우리는 오랬동안 마주하고 있다.

혈기왕성한 우리의 젊음은 이 용광로같은 신대륙에게 좋은 땔감이 될것이라는것도 직감했다.

의심없이 따랐던 우리들의 선장은 주저없이 ‘인도의 지도(Map of India)’를 펼쳐 우리가 나아갈 길을 제시하였다. 당연하게도 그 지도의 문법은 우리 눈앞의 신대륙과는 전혀 맞지 않았다. 더군다나 우리들중 누구도 인도는 커녕 제대로 된 모험 조차 해본적 없었다. 그 시절 우리는 모든것에 과분한 애송이였을뿐이다.

신대륙 개척이라는 기치를 걸고 당차게 고향을 떠나왔던 우리는 오래걸리지 않아 그 누구도 그 무엇에대해서도 정답을 알려 줄 수 없음을. 아니, 근본적인 옳고 그름 조차 우리손으로 새롭게 그려야 함을 깨닳게되었다.

곧 닥쳐온 작은 실패들앞에서 무능에대한 실망은 점차 커질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해서 살아남을수나 있을까?

함께 떠나오며 노래부르던 대의명분, ‘향료를 무역해서 모두 부자가 된다.’는 어느새 ‘향료가 있기는 한걸까?’, ‘없다면 짝퉁 향료라도 팔자’등 에서 발전해 ‘내가 생각하는 향료란…’ 이라는 주제로 변해 갔다.

(콜럼버스에겐 향료, 우리의 경우는 게임이다.)
<대의>였던 ‘게임을 잘 만들어서 성공한다.’는 새로 쓰여져야 했다. 실제로 잘 만들기위한 방법에대해 아는바가 전혀 없었다. 기존의 알고있던 방법은 수많은 시행착오속에 적용되지 않음을 확인했다. ‘게임을 잘 만든다’는 통용될수없는 말이었다. 아무도 그말을 이해해 행동으로 옮길 수 없었음으로 공유할 수 있는 문장은 결국 ‘성공한다’ 만 남았다. 성공해야한다 그리고 그 방법은 완전히 새로워야 한다.
신대륙은 지형만 새로운것이 아니었음으로.

 

대의 (大義)

대의란 목표, 나아가 올바른 목표라는 것을 함의 하는 단어이다.
올바름이란, 공동체의 다수가 공감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편의점. 배고픈 내 앞에 빵이 있다면, 그걸 집어 먹는 행위는 나에게 올바른 것이지만, 공동체의 입장에서는 범죄 즉, 올바르지 못한 행위가 된다. 그 빵을 집어먹고, 공동체에게서 쫒겨나 야생에서 홀로 살아갈 수 는 없기에 우리는 개인의 올바름(이로움)보다는 공동체에서의 올바름(공동의 이로움)을 더 상위 가치로 선택하게 된다.

공동체는 구성원들이 공감하는 목표인 ‘대의’을 방향삼아, 역량을 확장해 간다.

 

2002년

새로 쓰여진 <대의>는 공동체가 합의를 이루어 낼수없을 만큼 다양했고 선장의 권위 또한 그만큼 퇴색 되었기에 점차 각자의 신념에 따라 올바름을 추구하기에 이르렀다. 어리석게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이 새로움은 우리 안에는 없던 정말 새로운것이어야 한다는 강박이 존재했었다.

새로운 관점을 갖되 그 방향은 우리 자신이어야 했다. 우리안에서 답을 찾아야 했던것 같다. 출렁이는 공동체를 묶어주었던 대의라는 닻이 사라지자 우리는 빠르게 분열해 갔다.

바벨탑의 최후와 같이, 같은 한글을 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술사학적인 언어, 문학적 표현기법, C++, ‘정치’라는 상상도 못했던 부족의 언어, 작은 가지로 또다시 쪼개지는 ‘전공분야 사투리’로 우리의 공동체는 처참하게 무너져버렸다.

과거의 그 또렸했던 <대의>는 고향과의 거리만큼이나 저멀리 사라져버렸건만, ‘향료를 팔아 남긴 수익이나 기막힌 모험담’을 기대하고 있을 고향의 가족과 친구들은 이제서야 우리가 모든것을 새로 시작하는 진정한 해안선에 도달했음을 알지 못하리라.

그들에게는 이미 헐리우드와 같은 화려하고 멋진 모험극이겠지만,  현실의 우리는 그 무엇도 아닌 당장의 생존에 모든 옳음, 각자의 대의를 걸고 있었다. 이미 꾀 오래전부터 말이다.

명분(名分)

명분이란 각자의 상황과 위치에 기인한 당위성, 동기부여라고 할 수 있다.
목표를 이루고자 할 때에 명분이라함은  구성원 개인의 동기부여의 크기에 기인한 목표성취를 향한 힘이라고 할수 있겠다.

따라서 대의명분(大義名分)을 풀어 정리하면
대의는 방향(direction), 명분은 힘(energy)이라고 할 수 있으며,
대의명분(大義名分)은 벡터(Vector)라는 물리수학적 표현으로 치환 할 수 있다.

‘성공을 위해서는 대의명분이 있어야 한다.’는 바꿔말해,
‘공동체의 지향점은 구성원들에게 대부분 옳아야 하고, 방향에 대한 개개인의 열망-크기가 성취의 기본 단위이다.’라고 할 수 있겠다.

int PossibilityOfSuccess = 0;
public Vector2 OurTargetPosition = new Vector2 ( x.target, y.target);
private Float x.energy = (float) new Energy ( Ref OurTargetPosition.Magnitude) as LocalEnergy ;
private Float y.energy = (float) new Energy ( Ref OurTargetPosition.Magnitude) as LocalEnergy ;

if ( x.target == OurTargetPosition && y.target == OurTargetPosition){
   if ( x.energy > x.localTarget.Magnitude && y.enery > y.localTarget.Magnitude ){
        PossibilityOfSuccess ++; 
   } else {
       PossibilityOfSuccess --;
       if ( youAreLucky ) {
          Debug.Log("something wrong...");  
       }
   }
   break;
}
 
bool youAreLucky = OnlyGodKnows;

“구성원들이 진심으로 공동체를 위하기 전까지는, 우리가 하나의 사건에 실패했는지 성공했는지 조차 알지 못했다.”

 

2005년

각자의 명분을 찾아내느라 서로 흩어져, 고된 개척을 했던 시기. 그것은 다름아닌 척박한 이땅에서 살아남기위해 홀로, 또는 작은 그룹으로 힘을 모았던 시기였다.

‘향료’를 대신할 가치 있는 무엇.

쉽게 찾아낼꺼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 들려오는 소식에 다른 배를 타고온 사람들은 금광을, 어떤팀은 들소 때를 발견했다고 한다. 성공하고 큰 돈을 벌었다고 한다. 애매한 감정을 남기는 이야기속에 왜인지 기운도나지만, 증오와 비슷한 오기가 생겼다. 우리는 분열했기 때문이었어. 그때문이야. 다시 찾을꺼야. 꼭 이룰꺼야.

“나에게 가치 있는것은 금광도, 들소 때도 아니야.”

신대륙의 깊고 깊은 정글은 우리의 숙명이었을지도 모른다.
무언가 특별히 독점하고 싶은 욕심, 그 누구도 갖지 못한, 밟지 못했던 땅으로 점점 깊숙히 걸어갔다. 그러한 태도의 결과, 우리는 이곳 신대륙 고유의 자연과 신화에 점점 매혹되고 동화되었으며, 고향으로부터 입고왔던 문명의 갑옷을 하나씩 하나씩 길위에 벗어던졌다.
우리의 나약했던 피부는 점점 원주민과 같은 검붉은 색으로, 길잃은 영혼처럼 의미를 알 수 없는 푸른 문신이  온몸을 구석구석 채워 가게 되었다.
이곳에서는 풀잎이 자라고 태양이 지는것과 같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음으로 이러한 자신의 변화가 어떤 의미인지 의심하지 않았다. 결국 그렇게 모두다 다른 문양, 다른 길을 따라 각자의 정글로 흩어져 버렸다. 마치 귀신에 홀린 가엾은 짐승들과 다름없었다.

다른 말은 잊었겠지만 언제나 함께 나누었던 짤막한 이 이야기는 우리의 머리속에 늘 맴돌았으리라.

“저 숲속에는 산처럼 큰 거인이 있어. 그들의 사냥 기술은 우리가 이해할수도 없이 고도화 되어있고 재빠르기 때문에 아마도 우리가 저 숲속에 들어갔다고 깨닿기도 전에 산채로 잡아먹히게 될꺼야.”

서로 이해하기엔 점점 멀어져가는 각자의 언어, 각색으로 그 공포를 덪붙이고 덪붙이기를 반복하며 숲을, 정글을, 사막을 외롭게 해매어 다녔을 테다.

그리고 결국,
우리는 그 공포를 내면화 하는데 성공했다.

10여년이 흘렀다.

 

2017년

우리들중 어떤이는 실재로 그 거인에게 잡아먹혔다고 하고, 또 어떤이는 살아남아 자신만의 왕국을 새웠다고한다. 그 왕들은 부러워했던 다른배들보다 더 큰 성과를 올렸다는 분석이 있었다. 그리고 신대륙에 다녀온 많은 이들이 각자 분야의 언어(사투리)로 모험담을 후세에 남기고 있다.

전문 게시판, 고민상담 댓글은 물론이고 강의와 논문을 통해서 우리는 경험을 이야기한다. 각자가 도달했던 신대륙이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그곳에 도달하는 방법, 죽지않는 방법, 성취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심지어 이러한 전달의 장 또한 새로운 신대륙으로 삼는 사람들이 있다.

성공

나의 경우, 성공에대해 알아 낼수있었던 단한가지는 어이없게도 오직 신만이 알 수 있는 가치라는것 이다. 생각할 수록 오히려 궁금함이 더 커질 뿐이다.

왜 우리는 함께 뜻을 이루려 노력하지 못했을까?
우리가 사용해야 했을 공통의 언어는 무었이었을까?
우리 신화 속 거인의 정체는 과연 무었이었을까?

…

그 거인은 다름아닌 각자의 공포였으리라.
각자 언어로 이해하고 쌓아올린 내면의 공포였다. 고유한 언어, 사투리로 각색되었을지언정 같은 모양의 공포였으리라. 대의를 흐리게하고 명분을 약하게 만드는 대상. 따라서 내가 성취 할수없도록 방해하는 무엇.

그리고, 우리를 분열시켜 홀로 내팽겨지게 만든 장본인.

그리고 또한, 나외에 다른 이들에게도 공히 그 두려움과 불확실함을 나누어, 내가 새운 대의에 참여하기를 바라는 소극적인 포섭행위 일지 모른다.

상대의 ‘대의’와 나의’대의’를 맞추어 보고 토론해보는것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설득을 위해 타인의 언어를 이해해야 했었으나, 내 이야기를 먼저 했고 그들을 수용하기에 앞서, 공포를 통해 그들의 앞길을 막아 내쪽으로 오게 했던 때문이다.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던 디테일한 신대륙의 사건과 사물들은 매번 이 과정을 반복하며 단단한 공통의 단어를 만들고, 그 단어들은 신 대륙에 걸맞는 신 사고의 초석이 되어야 했다.

 

개발자로 성공하면 자유의 나라 미국에서 살게 될거라 생각했다.

한국의 개발자로서 나에게 IT라는 신대륙은 미국이었다.

콜럼버스의 미국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콜럼버스에게 미국이 인도가 아니었듯이

나에게 IT는 미국이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아마도 IT라는 커다란 대륙의 최종 국가명은

‘집단지성’ 이라는 국가가 될것이라고 생각한다.

 

.집단지성에 필요한 덕목은 무엇일까

ai와 대항한 인간.

알수없었던 이해할수없었던 또한, 고향의 언어에는 존재하지도 표현해본적도 없는 새로운 신세계라는 공포였다. 그 새로운 풀잎과 새로운 태양과 같은 세밀한 공포 디테일의 총합이었다.
“작곡을 잘 하고 싶으시다면, 유명 작곡가의 곡을 1000개쯤 분석, 재현해 보셔야합니다.”
“그림을 잘 그리기 위해서는, 빛을 이해하시고 구도와 동세를 먼저 배우셔야하고 데생은 그 기본입니다.”
“코딩은 말이죠, 하아… 박사쯤은 따셔야이해하실테지만 자 설명해드릴께요. $##%%#%#@…”
살아남은 우리는 고향에 돌아와 각자의 언어로 자신의 모험과 맞바꾼 대의명분을 후세에 전달한다.
새로운 표준, 공포라는 문법을 통해서 말이다.
신세계를 탐험하며 동시에 우리는 공포와 싸워야했다. 어떤이는 1000의 분석을 통해 싸웠고, 치열한 뎃생과 함께 신세계를 모험했다.
한 사람이 말하는 (그의)신세계는 자신이 경험했던 모습이다. 따라서 신세계란 1000개의 분석과 함께한 모험 그이상 그이하도 아닌 그 자체였다. 그가 살아남아 전했기때문에 후세들은 그가 경험한 신세계를 신세계라는 단어로 정의한다. 바벨탑의 실패를 재현하지 않기위해 공통의 단어를 정의하였으며, 좀더 구체화한 ‘신세계 지도’를 마음에 담고 승선하기에 이르른다.
하지만, 또다시 신세계에 도착한 그들은 아직 이 곳을 정의 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단어의 깊이라는점을 깨닿게 될터이다.
짐승으로 돌아가 하나의 명사부터 다시 재 정의 해야하는 혼란이라는 운명을 거역할 수 없을것이다.
우리가 경험한 것은 내면의 공포였다. 내눈으로 본 사물만이 그 세계를 구성하는 단위였다. 신화는 그 공포를 극복한 이야기이다.
대의명분이라는 과거의 짐은 벗어 버리자. 솔직하게 우리는 신화의 주인공이 아니었음을 그 주인공은 사실 우리의 공포를 형상화한 거인이었음을 먼저 밝히자.
15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신세계는 이미 문명의 중심이 되어버렸다. 이곳 신세계에서는 각자의 숲이 있고 각자의 길이 있다. 문명인들은 과거의 짐승처럼 이미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평생에 걸쳐 1000개의 곡을 암송하며 모험했던 숲은 이미 새로운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이곳에 어울리지 않아 벗어던졌던 거추장스러운 옷대신 아름다운 문신을 입고 말이다.
자신의 숲이 얼마나 위험했는지, 공포스러웠는지 전달하기전에 아이들이 떠나갈 또다른 신세계가, 새로운 숲이, 나아가 자신이 쓴 신화가 결국 각자가 만든 공포를 이해하는 과정이었음을 분명히 말하자.
그 고단했던 대의명분의 길은 결국 자신의 가족, 친구들을 향해 돌아가는 것이었음을 알려주자.
아이들이 결국 자신만의 모험을 마치고 돌아올 곳이 고향임을 알기에 우리를 힘겨운 싸움속에서도 이겨낼수있게 해주었던 대의명분, 즉 돌아와 사랑받을 수 있음을 알려주는데에 힘쓰자.
사랑해주자.

수많은 언어와 사고를 통해 우리는 사랑받고자 한다. 사랑받기위해 산다. 그점을 많은 이들이 짐심으로 이해한다면 우리는 새로운 진보를 이룩할것이다.

(오랜 텀으로 마무리 하다보니 문맥이 난해함;;;)

 

개인이 아닌 종으로서 우리를 생각해야한다.

-칼세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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