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겐슈타인의 언어게임.
사람과의 대화에서 언어란 매우 취약한 정보전달 매개체임으로 의미, 그리고 그 에너지와 뉘앙스 등의 차이에 의해 발생하는 각종 신텍스에러, 일레갈펑션콜, 널리퍼런스 에러등등이 인간대 인간의 대화에서는 밀당이되고, 감동을 주고, 오해, 답답함 심지어 분노나 애정에 이르게한다. 언어라는 바둑판위에서 우리는 매일 누군가와 게임을 한다.
나는 영어,중국어,일본어,독일어라는 도구를 사용해 ( 각각 표현범위가 제한적 이지만) 사람과 대화할 수 있다.
문법 공부를 거의 하지 않았지만 때때로 유창하게 -머리속에서 번역할 필요없이- 중국어나 영어로 생각하고 듣고 말할 수 있다. 꿈도 가끔 외국어로 꾼다. (하지만 역시, 세상의 표준지표로는 초중급이라고 해두자. 낄낄)
왜일까? 왜 게으르고 말 수 자체가 없는 나는 특히 중국어의 경우 단 몇개월만에 말문이 트이게 된걸까?
즐거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대상에대한 애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진짜)말이통하는 선생님과 친구들 때문이었다.
대화의 목적이 -바꿔말해 어학의 이유가- 대화기술, 의미의 차이를 줄이고자 하는게 아니었다. 매우 효율적으로 정확한 의미를 전달하고자 매달리지 않았다. 어투나 문법이 틀릴까 걱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틀린다면 더 재밌고, 좋아할 친구들이 있었으니까.
GTA는 게임의 룰(가상세계에서의 룰)을 파괴하는 재미가 일품이다. 이 게임이 나에게 던저준 화두는 문법의 규칙보다는 행위의 즐거움, 공감의 즐거움이 더 상위 가치라는 것이다.
문법을 배웠던 소시적 언어 교육
돌이켜보면, 선생은 나에게 베토벤의 교향곡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오선지상의 음표며, 지루하고 장황한 인생 연대기만을 통해 설명했던것 같다. 아름다운 그의 음악을 단한번도 들려주지않은 채로.
음악없는 음악교육, 대화 없는 대화법 수업이었다.
“게임을 시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튜토리얼을 위해서 소스코드를 정독해 주세요!”
ㅆㅂ…
코볼, 베이직, 포트란, 파스칼, 자바, 씨샵등등의 잡다한 언어를 표현의 범위가 비록 작지만 대부분 문제없이 다룰 수 있다.
홀로 완성한 게임을 (단독출시가 아닌)퍼블리셔를 통해 출시한바도 있다. 공돌이도 아닌 사람이, 어떻게 이런 개발이 가능한지 갸우뚱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나 = 그래픽 디자이너?
만드는 일 다 똑같다. 다른거 한개도 없다.
나와 대상과의 대화다.
간단하다. 애정이 생기면 만들어진다. 수천시간의 디버깅을 하고 설계를 처음부터 다시하는 한이 있더라도, 애정속에서 이세상 유일한 피조물이 태어난다. 대화를 통해서 말이다.
컬러를 잘 쓴다. 동세와 구도를 잘잡는다. 드로잉을 잘한다. 이루말할 수 없이 수많은 시각적 표현기법을 해봤다. 유화, 수채화, 컴퓨터그래픽. 시각디자인, 제품디자인, 로고, 웹, 앱, 3D, 애니메이션, 이펙트.
나는 주로 그림쟁이라는 직업으로 먹고살았다.
그리고 상기 모든 창작활동의 매커니즘은 그림을 그리는 일과 똑같다. 존나 그리고 싶어지고 미친듯이 그리는게 좋아지면 그때 켄버스와 말이통하게 되는거다.
음악가이기도 하다. 기타만 연주할 줄 알고. 악보는 일체 보지못하지만. 오로지 귀로 듣고, 그 느낌을 쫒을 뿐이다. 곡을 쓰고 편곡을 하고, 무언가 대상에대한 느낌을 음악으로 표현하거나, 흘러나오는 어떤음악에대해 악보나 스케일을 알지못해도 애드립연주가 가능하다. 음향, 소리 즉 사운드가 한 노트보다 중요한것같기에 장비에대해 덕후이기도 하다. 제대로 연주하기보다는 음악을, 소리를 듣고, 함께 놀줄안다(플레이).
최근 연주회를 갖고나서 사람들이 레슨을 문의한다. 그들은 내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서 가르칠께 하나도 없다. 놀라겠지만 상기한데로 나는 음표조차 보지 못한다.
미술이론이나 기법을 제대로 배운적이 없다.
초딩때 컴퓨터학원에서 베이직등을 배운게 전부다.
어학조차 마찬가지다.
기법과 잔기술은 필요없다. 이해없이 타인의 가르침, 입김, 평가는 부담이 되거나, 나약하게 만들 수 있다. 상대에 따라 그들과 대화 하지 않기를 오히려 알려주고 싶다. 타인보다는 하고싶은 행위나 사유와 직접 대화 하기를 권해주고싶다.
하지만 나는 사랑한다.
무언가를 사랑 할 줄 안다.
그 사랑과 내 행위에대한 신념이 죽음까지의 명확한 길이라는 사명을 지각하고있다. 따라서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사랑없이 대화할 수 없으며, 사랑을 담은 대화를 통해서만 우리의 자식들, 피조물들은 자라난다. 인생에서 어떤 트로피를 얻었든, 어떤 도전과제를 성취했든 부러워하거나 시기하거나 따라하거나 욕할 이유가 전혀없다. 타인의 껍데기는 의미없다.
이 인생이라는 즐거운 게임을 플레이하는 수단으로서 언어를 사용하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연주하는것이다.
자신의 신념을, 사랑을 이해해가며 하루하루 감사히 살아가면 될 뿐이다. 자신의 인생과 피조물, 공동체(타인)와 즐거운 대화를 하면서 말이다.
행복한 삶이란 이런 이치속에 있는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