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어떻게 고친단말인가.
어쩌면 내가 하는 모든 사고와 행위는 앉고, 눕기위해서 벌이는 짓일지도 모른다. 그래, 인간의 본성이 원래 이따위의 것이라고 치자. 그래도 자제력이나 인내심이 있었다면 보다 장기적으로 자빠지기로 했을테니, 그런 경우라면 지금은 눕지 않으려고 했을것이다. 조금더 목적을 이루고 조금더 잔고를 채우고 조금더 해야할 일들을 하고… 그렇게 조금씩이라도 성실하게 살게되었을것이다.
난 틀렸다.
하하. 나란 녀석은 내일의 두려움에는 눈감고, 오늘은 그냥 누워버린다. 무기력증 우울증이라는 핑계를 알기전에도 또, 알고난 후에도 영 고쳐지지 않는다. 모든상황에서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몰리지 않으면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않는다. 관련한 심리적 매커니즘이니 성향이니 하는것들은 뜨끔하며 공부하고 이해하고있다. 아니 이해따위는 충분히 했고 더이상은 알고싶지도 않다. 닥치고 몸으로 움직여야 하는데, 스스로 속이고 납득해 버리는게 문제다. 참으로 창피할 따름이다.
X-COM : Terror from the Deep
멍게 해삼 해파리처럼 못생긴 외계인들이 지구를 침략해서 xcom이라는 지구방위조직을 운영하고 직접 전투를 지휘하는 게임이다. SRPG장르라고만 하기에는 시스템이 상당히 디테일하다. 최애 게임 5개를 꼽는다면 들어갈만큼 좋아했다.
이게임은 당시 없었던 신박한 시스템이 있었는데, 내 팀원들(전투병을 대여섯 뽑아 외계인발견 지점에 파견하여 전투하게 된다)이 KIA가 되면 기껏 키워놨던 캐릭터가 자비없이 삭제 되는 시스템이다. 수십시간 동고동락하며 이름도 지어줬던 내 부하가 한순간에 죽어 버리면 정말 한동안 멍해질 정도로 멘붕이 오기마련이었다.
또한가지 잊지못할 시스템은 멘탈 지수다. 인근의 아군이 사망하거나, 주변에 외계인들의 흔적이 디수 포착되거나… 이때 캐릭터들은 플레이어인 나 처럼 멘붕이 온다. 멘탈지수가 0이 되어, status가 패닉이 되면 해당 캐릭터는 컨트롤 불가상태가 되며, 아군을 공격하거나, 맵을 이리저리 뛰어다니거나, 한자리에서 오들오들 꿈쩍 안하기도 한다.
무방비상태가된 이 캐릭터들이 마지막 턴까지 죽지 않고 무사히 해당 전투를 승리하면, 시설 내 정신 병동에 몇주씩 입원 시켜야한다. 멘탈 수치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외계인의 생물학적 특징, 종, 무기, 전술등을 연구해야한다. 과학자들을 때려넣어, 전투병들이 회수해온 외계인 시체와 아티팩트들을 몇주간 연구하고 또 연구해, 적에 대해 이해도를 높이고, 그에따라 적에게 대응할 기술이 진보할 수록, 그것에 더해 각 캐릭터들의 전투 경험이 많아질수록 멘탈은 강해진다.
패닉, 패럴라이즈에 빠지지 않고 온전히 외계인과 싸워 내기위해서는 캐릭터들의 멘탈관리가 무척중요하다. 그러기위해 플레이어는 이 공포의 대상을 계속해서 알아 내야한다. 공포란 이해할수없는 대상이나 현상에게서 느껴지는 감정임으로…
나는 요즘 외계인과 싸우고 있는 중이다.
동료들이 전사하고, 오징어같은 놈들이 문뒤에 서있디. 다음턴에 무슨일이 벌어질지 두렵다. 용감하게 총을 뽑을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 지휘관의 다급한 명령따위는 들리지도 않는다. 어서빨리 이 살벌한 전장에서 이탈하고만 싶다. 삐익! “상태:패닉”.
제자리에 누워, 스턴에 걸린것 마냥 요란스럽게 번쩍이는 헨드폰 화면만 바라보고 있다. 마우스 휠을 드레그 해 나를 지켜보고있는 카메라를 높이 올려 보았다. 자빠저누워, 지구를 구할 손쉬운 치트키는 없을까 궁리만 하는 그 바보같은 녀석이, 잠시 암전이 된 헨드폰 화면에 반쯤 비쳐 보인다.
내일은 뭐라도 말이지, 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해보자. 특별한 뾰족한 생각이 나지 않지만, 적어도 금쪽같은 다음턴을 그냥 패스하지는 말자. (재밌던 일들은 다 어디로 간거지?)
Is this going to be a stand up fight, si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