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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30

이 나이에 내가 뭘 잘났덴들 어딜가면 반겨주는 곳이 있을까
하수도를 들여다봐도 저멀리 산 정상을 올라도 도망갈곳이 없다.

바짝 따라오는 파도를 피할길은 지금 이 배에서 어떻게든 노를 젓는것 뿐이다. 노를 젓다가 고개를 들어보니 안개가 넘실넘실 중력을 거스르며 울산바위를 타고 넘는다. 파도처럼.

느긋한 리조트의 벤치에서 가을 햇살에 몸이라도 맏겨본다. 헨드폰을 하느라, 이 달콤한 쉼표를 지나쳐버리고 싶지 않있다.

잇사

고바야시 잇사는 하이쿠 시인이다. 일본역사를 특별히 좋아하는 나에게도 하이쿠는 ‘뭐야? 이 밍숭밍숭한 숭늉같은 맛은?’ 했더랬다.

사무라이가 할복하기전 읊는 시로 처읍알게 되었고, 그중에 ‘이 모든것은 꿈속의 꿈이로구나’하는 전국시대 노부나가의 최후의 하이쿠가 가장 인상깊었다. 주저리주저리 큰뜻과 깊은 의미보다는 운율에 맞춰 간결하게 즉흥으로 써내려가는 맛이있는것이 바로 하이쿠다.

잇사의 하이쿠는 알고있던, 살벌한 삶과죽음의 경계가 아닌 일상을 소재로 하여 흡입력이있으며 매력적이다. 일본 판화인 우키오에가 도자기포장지로 유럽에 들어갔을때 인상주의화가들이 일빠가 됐듯이. 잇사의 시도 서구의 이러힌 간력하고 소박한 시 스타일로 큰 영향을 주었다. 모더니즘은 모두 일본문화에서 기인한다.

대략 좋아하는 시를 모아봤다. 거의 한줄짜리다.

‘꽃그늘 아래선 생판 남인 사람, 아무도 없네.’

 ‘덧없는 세상​ 덧없는 세상이라고 한다지만​’

‘죽이지 마라, 파리가 손으로 빌고 발로도 빈다’

‘흰 이슬방울을 함부로 짓밟지 말렴, 여치여’

‘말 없이 앉아 먼 산만 바로보는 개구리로구나’

‘내 집이 너무 작아서 미안하네, 벼룩씨 하지만 뛰는 연습이라도 하게​’

‘미안하네, 나방이여 난 너에게 해줄 것이 아무것도 없어. 그냥 불을 끄는 수밖에’

‘얼마나 운이 좋은가, 올해에도 모기에게 물리다니!’

딱봐도 마루바닥에서 등이나 긁으며 허송세월하는 한량의 기운이 느껴진다. 이게 뭐라고… 하다가도, 풀잎이라도 하나 볼때면 이양반 시가 머리속에 떠오른다. 한량의 그 느긋하고, 포지티브한 에너지를 꽉꽉 담아 필요할때 꺼내쓰게 해주는 그런 없어서는 안될 시 였던거다. 달팽이 개구리 파리등의 작은 것에 대한 시가 1000편정도라고 한다. 사소한것의 깊이.

이렇듯 턱을 괴고 누워 앞마당을 멍하게 바라보는것이 사실 이 시인의 삶은 아니었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시를 써냈으며, 시 한구절한구절에 시인본인의 인생풍파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첫째가 죽고, 어린 둘째 딸마저 죽게되었을 때에도 그는 하이쿠를 써야했다.

‘이슬의 세상은 이슬의 세상이지만, 그렇지만’

그리고 얼마지나지 않아 셋째도 죽고, 50대가 넘어 뱃속에 넷째를 얻었으나, 그마저도 아내와 함께 생을 달리했다.

가난과 고통스런 삶으로 인해 그는 말년에 ‘세상은 지옥’ 이라고 하였지만, 잇사의 시만은 늘 한량스럽게, 또 평화롭고 고즈넉한 그의 마루 한켠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걱정말고 쉬고 가라고. 그 본인의 슬픔과 상실은 가늠할 길이 없으나, 그는 시를 통해 어떻게든 삶의 희망을 부여잡고 살아내고 있으며, 우리에게도 그것을 함께 잡고 살자고 말하는 듯 하다.

夕ざくら
けふも昔に
​成りにけり​

저녁의 벚꽃
오늘도 또 옛날이
되어버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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