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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15

그런일은 우연히도 금새 이루어졌다.

요몇일 신세계에서 초청받아 강연을 다녀왔다. 남산인근에 위치한 신세계 사내 교육시설이었다. 전국의 이마트 점장님들이다. 담배를 함께 피웠더니 금새 친해졌다. 다들 동갑이다. 아이들과 장난치는게 좋아서 중구의 여러 중고등학교들과 청소년 기관에서 지난 몇년동안 강의를 했었다. 그 덕분에 중구의 모든 길을 알고있지는 못하더라도, 네비를 따라 작은 골목으로 꺽을 때마다 머리속에 지도가 그려진다. 서울이라면 치를 떨던 내가 이렇게 성장했다니! 스스로 기특하다는 생각이들었다. 처음 중구에서 운전할때에는 변화무쌍한 길들. 이를테면 깍아지른 절벽옆의 아슬아슬한 도로, ‘와 이길로 매일다닌다고?’ 놀라던 공포의 경사면, 한순간 잘못들어가 오도가도 못하는 막다른 길에서 낭패를 보기 일수였다.

이번주의 길위에선 그런 긴장감은 없었다. 전쟁기념관이며, 이태원, 장충체육관 그너머의 동대문 그리고 방산시장까지 정신없는 갈림길과 신호가 아닌 풍경을 감상하며 운전했다. 오래전부터 서울 알러지가 있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식은땀이 흐르지 않으며 배가 아프지 않다. 더해서 나를 잘 따랐던 아이들의 얼굴들 때문에 지나가는 풍경에 미소가 지어지는 그런 곳이 되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소설 한여름의 방정식을 재미있게 읽었다. 복잡한 소설속 사건과 관계없이 소설속 배경이 되는 작은 바닷가 마을은 읽는 내내 꼭 가보고 싶었다. 따뜻한 햇살의 바닷가. 수많은 별들이 보이는 밤하늘. 느긋하고 느릿한 삶들 말이다.

밤 12시 갑자기 전화가 울린다. 쿠바였다. 운명이라는 한국이름을 쓰는 브라이언이다. 올라! 이녀석이 대뜸 내일 하바나 세종학당에서 한국어 발표대회에 참가한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엄청 긴 발표문을 한국어로 녹음해달란다. 나를 여보라고 부른다. 발표문의 내용을 읽자니 이친구의 사연이 깊이 녹아있다. 한국어를 사랑하게된 계기가 ‘세월이 약이다’ 라는 말 때문이란다. 이렇게 위로받고 치유받은 계기로 현재 의대생이고 곧 쿠바사람들에게 약을 처방할 의사가 될꺼다. 아픈 가정사와 성장 환경속애서 한국인 이라면 누구나 ‘겨우 이런말때문에?’ 라고 생각할만한 ‘세월이 약이다’에 대한 매우 감동적인 스토리다. 스페인어에는 이렇게 위로가 되어주는 말이 없다고 한다. 뭐지? 너가 듣기엔 도데체 무슨 느낌인거냐? 알길이 없다. 세월이라는 단어에 깊은 인상을 받은 모양이다. 아무튼 수차례의 말꼬임으로 몇번이나 다시 녹음했다. 한국어 내이티브의 자존심이다. 이 친구는 몇시에 사는지 귀찮아서 모르겠지만 내일 발표라고 했으니 시간이 더 있겠지. 학교에서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알리는 본인의 연설 영상도 인스타를 통해 보여줬다. 짜식 좀 치는데? 멋찐 녀석이다. 언젠가 네 이름처럼 운명적으로 만날 일이 있갰지!

문뜩 찾아온 새로운 계절처럼 우리의 꿈도 금새 이루어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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