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큰형의 카톡 타이틀이 문득 떠올랐다. (아 ㅅㅂ 형이 빌려준 돈 값아야대는데… 아 그래도 진짜 형밖에 없어 끄흐흑 )
“생각하는 대로 살아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는데로 생각하게 된다”
프랑스 소설가 폴 부르제인지 졸라인지 아무튼 멋진 문장이었다. 하지만 까칠한 내 포지션에서는 당연하게도 ‘사는데로 생각하면 왜 안돼?’ 라고 반대로 따저 묻고 싶은 충동이 일기도 했다.
사실 저 말은 갱장히 나를 따끔쓰하게 했음으로, 나름 한동안, 아 내가 뭔가 잘못된거야. 다들 저러고 살아서 잘사나? 하며, 내 삶의 방식마저 의심스럽게 만들었다. 어이쿠 나는 이런 주재에 겁은 겁나 많다.
그러다 우연히 나에게 유리한 과학적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실 멋있게 인용해보려고 했는데 키워드를 까먹음 ㅋㅋㅋㅋㅋ)
인간을 포함한 동물의 뇌는 앞에 놓여진 상황과 내 이익에 따라 순간순간 판단하고 선택하며 살아가는것의 반복이다. 필요에 따라 타인을 속이는것은 물론 나 자신도 아주 능구렁이처럼 속여 낼 수 있다. 특히나 닝겐의 뇌, 이 거대한 사회 단말기는 매우매우 훌륭한 거짓말 머쉰임을 잘 알지 않은가! 결국 대의를 위한다거나 미래를 위해서 라던가 하는 식의 자신의 생각을 산다는것은 사실 착각일 때가 많다. 그렇지 않은가? 그 가치 판단과 실행에 대한 생각은 어디에서 오는것일까 오히러 생각하지 않고 배운것 누군가 타인의 성공법, 또는 이와같이 멋진 문장에의해 우리의 생각을 그 틀에 맞추는 행위가 지금 말하는 생각이라는 것은 아닐까?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 형제들에서 나온 말처럼 예수가 끝까지 인간에게 주고자 했던것, 오히려 그것 때문에 그 이후로 인간이 큰 고통을 받게 된 ‘자유’ 의 의미와 일맥상통 할 수 있겠다. 자유로운 삶이란 오히려 끝없는 불안함을 유발하기에 우리는 노예가 되는것이 그에 비하면 얼마나 안락한지 잘알고 있다. 적어도 우리의 이 사악한 뇌는 말이다.
사방이 불안하기만 한 자유의 경우. 곧, 사는데로 생각한다는건 정말 피하고 싶은것일 테지만 이것이 오히려 현실이다. 과학자들이 말하길 뇌가 원래 그렇다는데 어쩔티비일텐가. 우리는 마른 땅에 물이 흐르듯 바람에 먼지가 흩날리듯 살아갈 뿐이다.
저 멋진 문장은 속된말로 야마가 차오는말일뿐, 이토록 어수룩한 우리들에게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죄의식만 가져다 주는것 같다.
아! 좀 어때 그냥 사는거지! 그냥!!!
괸찮다라고 써도 괜찮다. 오대수 처럼 오늘만 대충 수숩하며 살아도 좋다. 우리는 하나도 잘못되지 않았다.
사는 대로 생각해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