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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19

문뜩 두분 할머니들이 생각나서 무언가 기록해 놔야겠다. 그런데 쓰려고보니 두분 모두의 세례명이 기억이 나지 않아 무척 죄책감이 들고있는 중이다. 친가 외가 모두 싹다 천주교인이다.

친할머니 이름은 민병연. 딸이라고 무척 대충 지어진 이름을쓰셔서 왠지 억울한 뉘앙스다. 3째딸이셨나보다.
외할머니 이름은 고기산. 정말 특이한 이름이다. 뭔가 멋있기도하고 재미있어서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다녔던 기억이 난다.

외할머니는 내가 중학교2학년즈음 돌아가셨고, 친할머니는 10여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난 다음해에 돌아가셨다.

두분모두 나를 끔직히 너무나 사랑해 주셔서 지금의 내 이 삐뚤어진 성격의 원인이 되어주신 분들이다. 그야말로 모든것을 오냐오냐하며 키워주셨다. 항상 바쁘셨던 어머니를 대신해 두분이 나를 돌봐주셨고 아버지나 어머니가 혼을 내면, 끼어들어 내편을 들어주셨다. 두분덕분에 나는 철딱서니없이 내 마음대로 살았고 극단적인 정서적여유로움과 행복함으로 유년시절을 보냈다. 왕자님이었다.

친가는 전쟁이 끝날 무렵, 혹은 끝난 후에 남한으로 넘어왔다(시점은 불명확하다. 아버지 형제들의 기억이 다 다르다) 해주 최씨이고 대대로 해주에서 살아오셨다고 한다. 집성촌처럼 마을이 모두 최씨였고 할아버지의 아버지는 그곳에서 훈장을 하셨으며, 뭔가 방귀좀 끼는 그런 위치이셨다. 또한 할머니의 부모님은 황해도에서 최초로 여성학교를 새우신 분이라고 한다. 뭔가 뻥이 들어갔겠지만, 연로하신 어르신들과 동향의 신부님들 이야기를 교차검증해보면 아무튼 늘 아궁이에 불이 꺼지지 않는, 해주에서 유명한 큰집은 맞는가 보다. 매일 손님대접을 하느라 큰 아궁이 몇개에서 늘 설렁탕이 끓고 있었다고 한다.

전쟁이 터지고, 할머니의 말을 빌리자면 어떤날은 빨갱이들이 밥달라고 찾아오고, 어떤날은 코쟁이 놈들이 찾아오고, 좀있으니까 중국놈들이 와서 밥달라고 했단다. 전쟁내내 그지같은 꼴을 한 다국적군인들 밥해서 먹이느라 힘드셨다고한다.

전쟁막바지에는 죽창을 든 해주시의 청년들이 찾아와 ‘어르신, 어르신께 저희가 나쁜짓은 할수는 없으니 어서 남으로 도망치셔라. 지주이고 학자이고 천주교인이시니 다음번엔 어쩔 도리가 없다.’

이렇게 세번이나 찾아와 권유를 하고 부탁한 끝에 증조할아버지는 결단을 내리셨다. 작은아들아 니가 남으로가서 그곳의 친척들을 찾아 터를 잡아 놓거라. 그렇게 선발대로 내 작은 할아버지께서 먼저 인천으로 오셨으나, 마음약한 이분은 전쟁통에 굶는 사람들을 그냥 지나칠수가 없어, 한사람두사람 돕다보니 증조할아버지가 주신 돈을 몽땅 써버리고 말았다. 이 소식을 들을 새도 없이 정세가 급박해지니 증조할아버지는 아들(나의 할아버지)내외와 그 자식들을 남으로 보내고는 자신만 해주 본가에 남으셨고 그곳에서 아마도 최후를 맞으셨을거다.

작은 고모의 기억으로는 커다란 참외를 양팔로 감아 들고 집을 떠나셨다고하고 큰고모는 손을 흔드는 아버지와 넓은 목화밭을 어쩌나 하는 걱정이 기억난다고 하셨다. 아버지는 고작 4살이었다.

그들이 집을 떠나 밤이 시작될 무렵 도착한 곳든 해주 서남단의 해안이었다. 증조할아버지는 미 해군에게 연락해 많은 돈을 주고 자신의 큰아들가족의 배편을 마련해 주신거다. 당시 전쟁막바지와 전쟁직후에도 미군의 군함들은 밤이되면 알바를 뛰었다고 한다. 피난민들을 운송해주는 아주 기가막힌 로켓와우 새벽배송 알바. 매일밤마다 인당얼마씩 받고 밤에 태워, 새벽에 남한에 내려주는 식이다.

해안에는 할아버지의 가족만 있는것이 아니였다. 무수히 많은 해주시의 피란민들이 해안에서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후 해가 떨어지고 어둠의장막이 내리자마자 깜빡깜빡 점멸하는 짧은 신호와 함께 거대한 군함이 수평선에 큼지막히 다가오고 있었다. 사람들은 너나 할것없이 배가 보이는 쪽으로 바다를 해치며 걸어갔고, 몇개의 작은 보트가 사람들을 향해왔다. 그들은 사람들을 전등으로 비춰가며 태울 사람을 골랐는데, 아뿔사. 이사람들 대부분은 표를 구하지 못한채 단지 미군배가 들어온다는 소문만 듣고 왔던거다. 할아버지의 가족은 보트에 무사히 타서 군함으로 향했으나, 등뒤 수백개의 검은 색 수박같이 떠있는 사람들은 차가운 바다에 버려두고, 외면할 수 밖에 없었다. 군함에는 이미 여기저기서 사람들을 태웠는지 많은 이들이 갑판에 웅크려 앉아 있었다.

그렇게 밤새 아무런 불빛없이 배는 남쪽을 향했고, 어슴프래 새벽이 밝아올때쯤 미군들은 쏼라쏼라 사람들을 내렸다. 짐짝처럼 정신없이 내려밟은 땅은 인천이 아니었다. 서해안의 작은 무인도였다. 이후에 추정한 것이지만 당시 이 함장은 말그대로 상부 몰래 알바를 뛴것이니, 버젓이 인천항에 내려줄 수는 없었을거다. 더군다나 사상이 불순할 수도있는 북한사람들이니 더더욱 그렇다.

할머니는 양끼놈들이라며 이부분을 말씀하실때마다 화를 내셨다. 다른 섬과 멀리 떨어져있지는 않은 관계로 몇몇은 섬에서 탈출할계획을 세우고 땟목을 만들었다. 다른이들은 성공하면 대릴러오겠다고 약속하고는 바다로 향했다. 출발하고 몇분 되지않아, 검은색 그림자가 휘익하고 지나가더니 천둥같은 소리가 들렸다.

‘쾅쾅쾅쾅!’

무슨 소리인지 깨닿기도 전에 하늘에서 총알이 비오듯 쏟아졌고 사람들은 동시에 비명을 지르며 땟목위에서 바다로 뛰어들었다. 물속으로도 총알이 빗발치듯 떨어져서 다들 정신없이 물속에서 몸을 웅크리며 아이고 이제 죽는구나 하셨다고 한다. 얼마간인지 모를 아비규환속에서 할머니는 숨을 더이상 참지 못해 몸을 일으켜 새웠는데 어라? 바닥에 발을 닫고 설수 있고, 또 서보니 고작 목정도의 높이까지만 물이 차있더란다. 그제서야 주변을 둘러보니 놀란나머지 그대로 익사를 한 사람이 여럿 보였다고 한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기막힌일이었다고 몇번이나 말씀해주셨다. 그리고 더욱 기가막힌일은 하늘에서 쏟아진 것은, 총알아 아니라 탄피였다. 전투기가 지나가며 기관총을 쐈는데 하필이면 그 지점이 땟목 위 였던거다.

그렇게 다른섬으로 또 다른섬으로 배를 얻어타며 건너온곳이 강화도였다. 잘나가는 부잣집 도련님이셨던 할아버지는 할줄하는게 글뿐이셨다. 전쟁통에 한순간 무능력자가 되어버린거다. 강화도에 정착하시고는 인천으로 간 후 연락이 끊긴 동생을 찾는 한편, 계란장사등의 고된 일을 하시게 되었다. 할머니도 농사를 짓고 온갖 험한 일을 하시며 7남매를 키우셨다.

할머니께서는 돌아가시기 몇주전부터 병원에 입원해계셨다.친척들끼리 돌아가며 밤새 간호를 해드렸는데, 마침 돌아가시기 전날 밤이 내 당번이었다. 그날밤엔 주마등처럼 지난 이야기가 계속 생각 나시는지 밤새 내손을 잡고 말씀을 해주셨다. 나중에 통일이 되면 마을앞 삼거리에 괘종시계랑 꿀을 묻어놨으니 꼭 꺼내갖거라. 미군놈들이 우리 마을 사람들을 얼마나 많이 죽였는지 알아? 시장이 열릴때마다 폭격을 해서 마을 사람들이 총알맞아 죽거나 굶어죽거나 해야했다니깐! 니 엄마덕분에 아주 잘 살았다… 했던얘기 또하시먼서도 예전 그리운 풍경을 떠올리며 말씀하실때에는 감은 눈인데도 초롱초롱 빛나는듯 했다.

장례식에는 형제들이 아무도 울지 않았다. 막내 작은 아버지는 철없이 친척들에게 말했다. 솔직히 난 엄마라고 하면 광호 니 엄마가 내엄마였다. 네 할머니랑 할아버지는 아무것도 해주신게 없어. 속상했다. 내 동심속에 그 사랑많던 할머니가 해주신게 없다니. 그때부터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자식들에게 마음쓸 시간 없이 고생만 하셨구나. 그리고 그 평생을 미뤄놨던 사랑의 표현을 나에게만 잔뜩 남겨주셨구나.

오후 4시즈음 가장 볕이 좋던 거실 창가에 앉아,
성서를 매일매일 낭독 하시던 할머니 목소리.
불경을 읊듯이, 천자문을 외우듯이 읽으셔서 정말 웃겼는데.

눈을 감고 할머니의 품을 생각하면, 그 노래같던 운율이 들리는듯하다. 다소곳이 무릎꿇고 열중하시던 모습이 어찌나 보고싶은지…
지금도 볕이 잘드는 어딘가에서, 이 마음을 알아 주셨으면 좋겠다.

막달레나였나… 으이공

…

할머니 이야기를 대하드라마로 써봐도 재밌을것 같다.

외할머니 이야기는 못썼네 하하. 친할머니와는 느낌이 완전 반대인 엘레강스하고 세련된 우리 외할머니 이야기는 다음에 써야겠다.

외할머니 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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