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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04

어둠 속 불길하게 깜빡이는 쉘핑크색 간판아래. 셔터를 누른것 처럼 사람들의 실루엣이 번쩍이며 나를 노려다본다. 시원한 여름 옷을 입은 마네킹들이다.

새벽3시의 거대한 쇼핑몰. 이곳에서 야간작업을 하게되었을때 당연히 좀비영화를 찍을 생각이었다. 다른 무엇을 상상할 수 있을까? 좀비말고 다른 생각이 가능해?? 아 도저히 모르겠다. 좀비말고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하는척 심각한척 작업은 꼬맹이 녀석들에게 미뤄버리고, 난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광활하고 섬뜩한 스타필드 고양점의 모든 공간을 상상의 좀비로 가득 채우며 뛰어다녔다. 이히히힛!

밤새 놀꺼다! 소설이라도 한편 쓰게될것같은 기세였다. “좀비 서바이벌 가이드”에서의 쇼핑몰은 피난처로 좋지 않다고 쓰여있지만, 이곳은 보면볼수록 모든것이 완벽히 준비된 쉘터다. 비상상황에 이곳으로 숨어들기만 한다면 그냥 엔딩 크레딧올라가고 영화가 끝날것같다. 식량, 무기, 방어체계, 오락이니 자급자족이니 쌉가능이다. 스탭들을 위한 비밀통로 지도를 입수했더니 이곳은 완벽히 차단될 수 있는 성이라는걸 알게됐다. 아 현대의 건축이라는것은 좀비 아포칼립스에도 대응할수있도록 설계되는게 확실하다. 놀라움과 동시에 공포는 사라지고 시시해졌다. 좀비를 이기기엔 너무 쉬운 곳이다. 이곳을 무대로 한 내 머릿속의 영화는 좀비와의 사투보다는 이곳에서 함께 생활하는 인간과 인간의 갈등이 주제가 되야한다는 현실적이고합리적인 판단이 섰다. 김이 빠졌다. 에이 뭐야. 허탈한 마음에 중앙 홀 기다란 소파에 우두커니 앉았다. 대각선 반대편 매장에서 날카로운 절단기 소리가, 엄청나게 공간을 낭비하고있는 거대한 홀에 겹겹이 울려퍼진다. 으으음 그래그래 이거지 이런 효과음이 맞지 으하하하. 역시 짜릿하다. 전기톱소리다. 저 전기톱은 좀비의 팔다리를 절단하는 소리다. 사방에 피를 튀기며…

머리속에 명작게임 ‘용사주제에 건방지다’가 스쳐지나갔다.

그래. 차라리 좀비에 감정이입을 해보자. 인간을 잡아먹는 좀비가 주인공이 되어야겠다. 히힛. 어쩌다쇼핑몰에 들어오는것은 성공했으나 이 고노 와타시 좀비는 이제 무엇을 해야할까?
좀비는 죽기전 평소에하던 습관대로 행동한다고 한다. 인간을 찾아 뇌를 먹는것은 그들에게 결여된 지성을 되찾기위한 본능인것 같다. 사냥감이 감지되기전까지는 생전의 일상을 바보같이 반복하는거다. (쎄임 애즈 어 레알 닝겐)

크르르르르 으으으
옷가게… 침구류, 가구점… 관심없다.
맛집, 커피… 베이커리… 관심없다.

아아 스톰트루퍼!!!! 스톰트루퍼 하악하악
아아 이거뭐야 이 못생긴물고기 뭐야 아하하하
뭐야 얘네들 이름이 학명이네? 와 개쩐다 어떻게 이렇게 진화한거지? 민물이야? 엥? 아가미가… 야임마 이런데서 죽으면 안돼 힘내!

어라…

분명 좀비였었는데… 정신이 들었다. 아니다. 좀비였던 내가 게임오버를 당한탓에 정신이 깨었던 것일꺼다. 좀비였음에도 평소처럼 산만한 호기심때문에 끌려 다니다가, 수조관에 숨어있던 인간이 220볼트 멀티탭을 물속에 넣어 날 구워버린거다.

아쒸 뭔가 대단한 모험을 하고 싶었는데. 100미터 건너편 프로그래머 녀석과 눈이 마추쳤다. 눈치가 보이기 시작한다. 낭만이라고는 1도없는, 이 좀비같은 프로그래머 새끼들. 일이 그렇게 좋아? 왜 나랑 안놀아줘?

에잇 일하는척 몰래 거울방에 잠입해서 수영이나해야지. 히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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