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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04

종강을 하고 사무실로 가려고 하는길에 사업파트너와 많이 다퉜다.
하루이틀의 일은 아니지만 도저히 대화가 되지않는 지경에 이른것같다.

대부분은 내탓이다. 소시오패스라고 불릴만큼 타인과 공감을 잘 하지 못한다(라고 한다)
내가 얼마나 이상한지 물어볼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없지만 누구보다 타인에게 관심많고, 그들의 관점과 취향과 의미를 읽으려 노력하며 살았다. 온신경을 곤두새워 먹이사슬의 가장아래 동물처럼 주변의 모든 감각을 읽는것은 피곤하고 스스로 괴롭지만 타고난 감각이라고, 또 어떤면에서는 장점이라고 생각하며 가느다란 실처럼 흔들리는 세상의 감정을 잡아 느끼는것을 끊어낸적은 없다.

하지만, 정작 따뜻한 말한마디는 늘 내마음속으로만 하고 있는것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자신의 가면을 바꿔가며 사회적으로 알맞게 고쳐쓰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공허한 공감과, 학습하여 재생되는 따뜻한 대사는 나에겐 거부감이 있어, 나 자신은 그런 행동을 조심스럽게 할 따름이었다. 진심은 늘 자연스럽게 전달될꺼라는 이상만으로는 자신과 관계를 지켜내기에 역부족이다.

게임을 만들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거의 고독하고 괴로운 회오리 안에서 일해왔다. 디자인, 아트, 프로그래밍… 모든것을 늘 스스로 결정하고 가장 효율적이고 가장 편리하고 빠르고 예쁘고 사용자들이 받아들일수있는 알맞은 온도와 맛으로 조율했다. 어떤 사람들은 천재라고 하고 어떤사람들은 재수없고, 꼬마들은 좌절감을 느끼게 되었던 모양이다. 늘 기대했던것 이상으로 결과를 만들어야한다는 점은 바뀔수없는 전재였다.

재수없겠지만, 잘한다. 효율적이고 아름답게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할 자신이 있다.
늘 타인들의 가느다란 감정의 동요를 읽고 그것을 조금씩 당기고 움직여 가장 빛나는 한 지점을 알아내는 감각에서 비롯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가능하다면 세상어디에서도 볼수없는 새로운것, 복합적인 경험 또한 경험한 많은 미디어에서 오마쥬하거나 패러디하고 그 느낌의 정도를 적당한 거리에 놓는다. 이것은 창작이라기 보다는 장기판 처럼 적당한 곳에 배치하는 행위다. 완전히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는없다. 다만 얍삽하고 섬세하게 그리고 부드럽게, 사용자라는 연인의 감정선을 잘 이끌어 본래 자신들의 것인 그들 안 고유의 환희로 향하게끔 하는 일이다.

즉, 내가 원하는것은 타인의 즐거움이다.

그 막막하고, 스스로는 도저히 찾을 수 없는 영감의 소스는 타인의 감정이다. 타인의 취향이다.
내 자신의 스타일이나 작품의 독특한점은 이 과정을 통해 타인에게 느껴지는 결과론일 뿐. 나는 그 과정속에서 이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던적이 한번도 없다. 나는 그저 그릇이고 담기지 않으면 텅 비어있다. 그것이 한없이 괴롭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은 곧 세상에대한 나의 쓸모라고 믿고 있다.

너절한 우월의식, 오만함, 자기도취는 늘 벗어나려고 발버둥치고 있지만, 이러한 독선과 자기확신은 모든것이 순식간에 무너저 내리고 언제나 멸망할 수 있는 세상에서 어쩌면 유일한 버팀목이다. 작품은 민주주의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런 독재자같은 기둥이 없다면 아무런 실도 연결시켜 만들어 낼 수 없다. 어두운 방에서 방향을 선택하고 걸음을 믿을 수있게 하는것은 정말 미안하지만 이런 내 자신의 감각에대한 쓰래기같은 믿음이다.

또한 나는 게임개발자다. 다른 예술에서 흔히 보여지는 내 자신만의 세계관은 어불성설이다. 사용자의 플레이를 통해서만 완성되는 작품이기때문에 개발자 자신만의 세계를 만드는일 따위는 할 수 없다는거다. 더군다나 따지고 보면 역사의 모든 예술가들도 묘하고 누구도 눈치 채지못하게 관객과 독자들의 감각에 손을 건내는 일이다. 관객이나 독자가 없는 예술과 미디어는 없다.

누군가의 눈치를 보는 행위. 대중문화에서 치가 떨리도록 싫었고, 앞으로도 ‘네네 흡족하실 결과물을 만들었습니다’라고 나는 말하지 못할것이다. 하지만 사실 그렇게 하고있고 할수밖에 없다. 그들과의 거리를 밉지도, 우습지도 않을 정도로 재고 있는것 뿐이다.

작가주의를 사랑한다. 집요하게 자신의 세계를 만들었던 수많은 예술가를 동경하며 매일 그들의 꿈을 꾼다.
그들의 가느다란 실은 확실히 나를 사로잡았고, 나또한 그들처럼 그들의 흉내를 내며 살고 있다.
그 실을 한참 바라보고 따라했지만 그 누구도 세상을 타인을 위하고 사랑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온전히 자신만의 세상을 찾아간 사람은 없다. 알 수 없는 기막힌 암호로 세상을 향해 손을 내민것일 뿐이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그들의 작품을 애초에 볼수도 없었을 것이다.

개돼지 사용자는 나에게 연인이다.
난 그들이 싫다고 말한다.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한다.

거짓말이다.
존나 사랑받고 싶다.

회사에서 사람들에게 미움받으면서도 내 뜻대로, 내 오만한 독선대로 하길 원하는것은 뭐라 장황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해시키기에는 늘 바쁘지만 누구보다 존나 사랑받고 싶어서다. 그 욕망이 늘 어딘가에 도달했던 결과가 있기 때문이다.

화가나고, 진저리 치게 날 미워하면서도 결국 나를 버릴 수 없는 이유는 그것 때문이다. 유일한 쓸모이기 때문이다. 모가난 톱니바퀴. 늘 마찰이 있지만 그래서 어쩌면 폭주기관차로 무작정 사용자에게 때려박는 결과를 막는 역활일지도 모른다. 잘 모르겠다. 늘 공허한 의문밖에는 없다.

젠장 이런 감각에 몰두할 수록 세상과 사람들에게서 멀어지는것은 (자기연민에 빠진 꼬마같지만…) 필연인것 같다.

오랜만에 일찍 퇴근할 수 있었는데,
글을 붙잡고 화풀이를 했다.

이 헛된 불순물같은 감정은 걸러져서,
될수있으면 유연하고 따뜻한 영감만이, 당신을 향한 실로 전달되기를 소망한다.

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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