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산 외할머니에 대한 글을 써보려고 했는데, 어렸을때의 흐릿한 기억에서는 뭔가 재미있는 에피소드라기보다는 전체적으로 풍겼던 분위기, 또 그 단편들을 추론해 만들어낸 가정 정도를 써야 할것같다.
이름은 기산. 늘 세로로 읽는 일본어로 된 책을 읽으셨기 때문에 일본인은 아닐까 생각했었다. 인천 기계공고 뒤편에 위치한 할머니집은 일본식 집이었고(완전 일본집인 적산가옥은 아니다) 분명히 한국말인데 일본어 단어를 많이 섞어 쓰셨다. 단순히 쓰매끼리니 가다마이, 와루바시와 같은 일반적으로 쓰는 일본어가 아니라 아예 무슨말인지 몰라서 기억할수도 없는 단어를 섞어쓰셨다. 서제에는 책이 엄청나게 많았는데 도스토옙스키라는 소설가를 처음 봤던곳이다. 의상은 늘 서양식이었다. 같은 또래의 친할머니가 한복이나 펑퍼짐한 바지를 입었던과는 반대로 늘 숄을 두르시고, 화려한 와이셔츠, 뭔가 묘한 패턴이있던 스웨터, 어깨가 좁은 여성용 가다마이, 부채처럼 세로로길게 주름이 있던 치마들이 기억난다. 은은한 향수도 기억이난다. 키가 170이셨다. 머리도 늘 단정하게 정리되어있었는데 어떤상황에서도 이렇게 세팅된 할머니의 모습만 기억나는것을 보면 뭔가 신여성, 지식여성의 전형이셨던것같다.
외할머니 하면 빼빼로가 기억난다.
어머니대신 나를 돌볼때엔 늘 빼빼로 하나를 사들고 오셨다.
내가 좋아해서가 아니다. 사실 다른과자도 먹고싶었지만 언제나 빼빼로 딱 하나만 한번도 빠짐없이 사다주셨다. 단한번도 빠뜨린적없고 단한번도 다른 선물인적이 없었다. 어렸을때부터 미스테리했다. 과연 무슨 이유였을까 사연이 있었을까? 일본과 가까우셨으니 포키와 연결된 사연이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기억의 단편들을 하나로 묶어볼생각으로 지피티에게 여러 단서를 주고 이것저것 함께 추론해보았다.
외할아버지가 만주에서 찍은 사진과, 가족아야기를 한번도 들을수없던것, 또 일찍돌아가신 남편 없이 혼자 5남매 키우시며 딸이 펜싱선수였던점들을 고려하면, 할아버지는 일제시대에 만주에 파견나간 고급 기술자이며 두분모두 일본식 교육을 받은 뭔가 좋게말하면 엘리트 나쁘게 말하면 동양척식회사에 기여한 집안이었을것이다.
다만 일본식이름이니까 한국어로 이상한거겠지했던 기산이라는 이름은 일본에서 여성에게 볼 수 않는이름이라고 한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 하지만 20~30년대에 여성에게 이런식의 특이한 이름을 지어주는 문화도 존재했다고한다. 한국식도 일본식도 아닌 이름이며 뜻 또한 남성적이고 강한의미다. 북한의 개성이나 함경도의 고씨셨을것 같고, 할머니 스스로 지은이름이 아닐테니 집안의 내력이 그런 기세가 있는 강한 느낌이었으리라. 다만 자손들 (내 어머니와 형제들)의 이름은 누가봐도 일본식 이름이다. 따라서 집안 내력과 다르게 외할머니 세대에서 자손의 이름을 바꿀만큼 일본의 사업에 기여했을것이라는 가정도 가능하다.
대들보위의 상장이니, 한자로된 공문서니… 종합적으로 집안, 남편의 자산으로 홀로 자식을 키워낸 일본식 신 여성이라는 정의에 가까워진다.
돌어기실무렵 뼈만 앙상하고, 얼굴에도 살이 하나도 없어 톡치면 부숴질것같았는데, 마침 티비에서 인디아나 존스 최후의 성배의 해골장면이 나왔다. 어… 할머니랑 똑같애 라는 농담이 입으로 나올까봐 꾹참았던 기억이난다.
물어볼사람도 더듬어 기억할 사진이나 사건도 없다. 기억해줄 누군가가 없다면 영원히 사라지는것이라고 한다. 이 글을 읽을 누군가의 아주 작은 기억의 한픽셀이나 또는 작은 영감이되어 할머니 두 분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기를 기도해본다.
나에게 11월11일은 빼빼로데이이자, 도스토옙스키와 외할머니가 떠오르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