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번째 같은 제목이던가? 그렇다면 악몽(3)
공간, 시간 역순
99.
잠을 깨어보니 굉장히 불쾌한 기분이고 밤이었다. 동시에 나는 싸구려 모텔에도 있었고, 본가에도 누워있었던것 같다. 아버지 방 가장 안쪽에 누워있고 아버지는 문간에 누워계신다. 티비의 노이즈는 흑백인데에도 이 공간에 아쿠아블루를 소리없이 매워주고있었다. “전기장판은 켰나”라고 했더니 “뜨거워서 잠시 껐다”고 하셨다. 새벽이라 자는 줄알았더니 깨어계셨던 모양이다. ‘꿈인데도 꾀 대사가 디테일하네’라고 생각했다. 동시에 나는 바로 앞장에서 설명이 가능할지 모를 누군가에게 강간을 당하는 상황이었다. 아버지 방에 있던 아쿠아블루가 이 비틀린 사내의 몸을 통해서도 반사돼고 있었다. 더럽고 끔찍한 기분으로 나는 꿈에서 완전히 깨어났다. 땀이 온몸에 흥건하다.
98.
동혁이를 따라 이동한곳은 해가 뉘엇뉘엇지고있는 어느곳의 모텔앞이다. 실제적 거리와 관계없이 군산 외곽의 느낌이라고 느꼈다. 주차된 차가 거의없어 마당에는 검회색 자갈만 잔뜩 깔려있었다. 동혁이와 동료 두명이 걸어들어 갈때에는 왠지모르게 갑자기 찾아온 엄숙한 침묵과 대비되어 사각사각거리는 자갈소리가 도드라지게 느껴졌다. 로비나 데스크는 따로 없고 공터뒤로 돌아, 마루를 통해 앞선 두명의 동료는 익숙하게 신발을 벗고 맨발로 방으로 향했다. 따라 들어가던 나와 동혁은 우산을 놓으려다가 잔뜩 가로로 쌓여있는 우산들때문에 놀라 잠시 주춤했었다. 그러고보니 꾀 습한 초여름 늦은 저녁이었다.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수있는.
동혁이는 나를 안내하며 방으로 향했는데, 1층이었고 한개의 숙소를 또 한번 두어개의 방으로 나누어 공유하는 듯했다. 친구의 딱한 사정과는 별개로 동혁이가 들어서자마자 ‘어~ 왔노’ 하며 거들먹거리는 덩치들의 놀음판이 꾀나 불길한 기운으로 느껴졌다. 그들은 가장 바깥쪽공간을 사용했기에 안쪽의 방을 쓰는 동혁이 일행은 들어가고 나올때마다 연배도 어려보이는 이 사람들에게 통행료를 내는 기분으로 친한척을 하는듯 했다. 동혁이네의 방에는 먼저들어간 2명을 빼고도 3명이 더 있었다. 열어봐야 바로 앞건물의 가스통의 엉덩이만 가득보이는 작은 창문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가구도 티비도 없었다. 공기도 통하지 않을것 같은 이 방바닥에 사람정도의 부피를 더해보았다. 6명이 어깨를 맞대고서야 겨우 잘 수 있는 공간이다. “동혁이 친굽니다.” 하며 인사했을때에는 먼저 총총걸음으로 들어간 두명의 친구들이 쉬고있던 동료들을 깨워 동그랗게 앉을 자리를 만들고 있었다. 아까 지하철에서 보았던 마른체격의 친구는 싸구려 형광등 아래에서 다시보니 시체 처럼 안색이 안좋았다. 이 친구들의 삶이 얼마나 빡센걸까. 동그랗게 모여앉은 우리들은 사실상 얼굴을 맞대고 있는것 같았다 무척 어색했다. 그들도 이렇게 함께 마주한 시간은 많지 않았는지 아까 말한 친구를 선두로 몇몇은 남자들만의 사회가 아니랄까봐 굳이 못알아듣는 군대용어를 쓰며 일어나 방을 나갔다. 동혁이는 자고 가라고 했다. 마음은 고맙지만 이정도라면 오히려 나에게 실례가 아닌가? 그때에 나갔던 동료들이 술을 싸들고 왔다. 안색이 않좋던 친구는 특유의 긴장섞인 높은톤으로 “아이, 오늘반갑기고하고 그러니까 오랜만에 목이나 축여야지” 하며 소주 반병을 그대로 꿀꺽꿀꺽 마셔버린다. 그에 호응하며 반대편 친구도 새 소주병을 돌려 열더니 남김없이 나발을 불어버린다. 코앞에서 얼굴을 맞대고 술을 마시는 모습을 보니 이 부분에서는 슬로우모션으로 리듬감있게 각각의 얼굴을 교차로 컷컷하는 인스타그램의 영상같은 화면이었다. 그들은 누군가에게 자신의 삶은 보이는 모습보다 강하고 완고하다는 설명으로서 이런영상을 스스로 택한것 같았다.
나도 술을 한잔했으나 마시던 술에서 누군가의 입에서 나왔을 밥풀이 나와 더이상 마시기 싫었다. 습한 밤거리는 안개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들어올때와는 다르게 꾀나 밝고 화려한 간판이 모텔근처에 즐비해 있다. 가게이름은 모두 안개에 가려졌지만, 흰색 파란색 빨간색. 모든 간판이 ‘여기에도 사람이 있음.’ 이라고 써있는 것 같았다.
동혁이는 그러고보니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 쉴세없이 유식한 말을 쏟아내던 천생 문과 기획자인 녀석이 오늘은 반가운친구를 만났지만 막상 할말은 없는 그런 상태로 어정쩡하게 작별인사를 한다. 나는 이 친구를 또 만날 수 있을까? 나는 이친구에게 큰 상처를 주었다. 그가 알고 있는것만이 아닌 다른일로도… (꿈속의 이야기니 꿈속의 이야기라고 하자) 난 녀석이 타던 500cc의 가와사키 오토바이가 늘 부러웠다. 나의 책임으로 그녀석과 멀어질수 밖엔 없었지만 그사이에 그가 해주던 맛깔나는 입담은 늘 그리웠었다. “강릉 방향으로 가면 인천이야.” 11시40분 기차가 아직있을까하는 질문에 동혁이가 대답해준 말이었다. ‘공간도 다르니 시간도 다르겠지. 강릉 방향 인천이라니 인천앞바다가 동해인건가, 강릉 앞바다가 서해인건가. 결국 집은 여기서도 인천이네’. 몇걸음 걸어 고개를 돌렸다. 세상의 모든 상처가 아물기를 기도하며 안개보다 높게 손을 들어 녀석에게 인사했다. 안개속에서 희미하게 웃는 입술이 보여 안심했다. 내 협소한 기준으로 판단할뻔한 그녀석의 인생을, 좃까라며 안심시켜주는 미소였다.
97.
헐래벌떡 뛰어내려간 지하철 상하행 노선은 현실의 그것이 아니라서, 꿈속에서 노선도를 보고 있자니 도무지 이해가 안돼었다. 막 도착해서 문이 열리기 시작한 열차의 행선지는 아무리 눈에 촛점을 맞춰도 읽혀지지 않았다. 게임이나 영화에서 마스킹된 모자이크처럼 말이다. 아니지 시각적인 것이 아니고 인지적으로 안읽혔다. 좀더 관여할수있다면 농담같은 말이라도 써놨을텐데. 아무튼 느낌으로 이 플랫폼은 목적지와 반대였다. 마침침 건대편 승강장의 ‘빰빠라밤~’하는 도착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FPS의 그것처럼 FOV값이 높아지며 어안렌즈처럼 사방이 보였다. 우회적, 우회전, 계단… 왜 계단? 이라며 또다시 설정에 불만을 토로하려고 할때 어떤 여학생 (대학생이었을것이다)이 비명을 질렀다. 백인 이었기 떄문에 더욱 의외인 상황이었다. (확실치 않지만 이곳은 한국인것 같다) 그리곤 그의 엄마가 있는 곳으로 뛰어갔는데 키가 훤칠한 어머니 혹은 선생님은 그녀를 침착하게 안아주는것이 아니라 지하철이 울릴정도로 크게 소리치는것이 아닌가? “Hey Sally Look at me! In this case… Look! You have to say it 3 times ok? Repeat 3 times! 3 Times!!!” 아이는 확연히 자폐관련한 문제가 있는 친구같았다. 영문을 알수없는 상황을 지나쳐 다시 코너를 돌아가려할때에 방금전 그 자폐스펙트럼의 여자아이는 나를 빠르게 지나쳐 뛰어가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들어보지도 못한 리듬의 랩이었고, 이쪽 장르는 전혀 모르기때문에 꿈속에서 “와~” 했던 그 흔적을 기록할 방법이 전혀 없다. blind melon의 three is magic number 처럼 숫자3에 대한 이야기인것도 같고, 특이한 점은 랩에서 모든 단어를 3번씩 말한다는점이다. 서펀트 증후군이라고 하던가? 이 아이는 노래를 할때만은 완전히 다른사람 아니 특별한 사람이 되는듯하다. 그 바쁜 지하철 통로의 모든사람들을 얼어붙게 했다. 강박적으로 단어를 3번씩 반복하는것은 매우 이 곡을 특별하게 만드는 마법 같았다. 지나가던 또래의 친구들이 모여서 스테인레스로 되어있는 계단벽과 에스컬레이터등을 악기처럼 쳐 비트를 만들어 주고 있다. 어떤 아이는 발로 킥드럼마냥 벽을 쿵쿵 치고, 난간에 위태롭게 앉아 래게머리를 흔드는 아이는 발과 에스컬레이터의 손잡이와의 마찰음으로 박자를 더 맛있게 쪼개고 있다. 각자 손바닥이나 가죽가방등 소리를 낼 수 있는 모든것을 활용해 그녀와함께 리듬을 나누고 있었다. 그녀의 노래가 고조 되면 주변의 아이들은 모두 민감하게 그 노래에 따라 각자 박자를 더 잘게 복잡하게 혹은 단순하고 명확하게 하늘의 새때나 바닷속 정어리 때 처럼 모두 한몸이 되어 움직였다. 그녀의 3번씩 반복되는 노래가사와 천부적인 리듬감. 그리고 이따금 숨이차올라 호흡하며 얼굴을 찌푸린채 공간을 단번에 꽉 채웠던 허스키한 멜로디는 정말로 이 세상의 것이 아니었다. 영상으로 꼭 남기고 싶었다. 꿈속에 폰을 가져갈수는 없는걸까?
당연히 나또한 박자에 맞춰 벽을, 땅을 발로 차고 있었다. 노래가 모두 끝나고 다들 오랫동안 박수를 치며 발을 굴렀다. 무거운 발소리가 지하철의 좁은 홀을 따라 반사되어 더욱 낮고 웅장한 소리가 되었다. 그녀에게 보내는 찬사였다. 그녀는 또다시 촛점없는 얼굴로 어딘가를 보다가 다시 엄마 혹은 선생님 방향으로 사라졌다. 나도 반대 방향으로 뛰었다. 다행히 느낌상의 막차를 탔고 헐떡이는 숨과 고조된 감정을 환기하기위해 기차의 다른칸으로 걸어가기로 했다. 두번째의 차량 노약자석에서 낮익은 얼굴이 보였다. 그대로 지나간다면 못본척 지나갈수있을 짧은 순간의 알아차림이었다. 하지만 정말 알아차린것으로 하기로 했다. “야 동혁아 이게 얼마만이냐.” 반쯤 누워서 천장을 보며 친구들과 말하고있던 녀석은 진짜로 못봤는지 깜짝 놀라며 환하게 웃는다. 하나도 늙지 않았다. 나도 늙지 않은걸까 이녀석도 한번에 알아보다니. 자세히 보니 동혁이의 짐들이 여기저기 놓여져있었다. 중국에서의 농민공과 같은 행색이었다. 이녀석 (현실의 사실과는 다르지만) 원래하던일로 돌아갔다고한다. 게임개발은 지긋지긋하다고 한다. 아이들이 둘이나 있다고 해서 기특하고 기뻤다. 하지만 일정한 간격으로 덜컹거리는 기차의 소음을 배경으로 들리던 녀석의 넋두리는 예전과 조금 달랐다 시급이라느니 원가라느니 숫자같은 현실적인 이야기를 할때에는 왜인지 가슴이 아팠다. 아이들과함께 지내지도 못하는 모양이다. 그도 멋적었는지 눈동자를 한바퀴돌리더니, “아참!” 하면서 뒤늦게서야 동료들을 인사시켜 주었다. 그들은 어딘가 마음한구석에도 굳은살이 박혀있는 표정으로 웃어주었다. 이 기차가 도데체 어디를 향하는지는 알수 없지만, 몇정거장 후 내손을 잡아끄는 녀석의 완력에 어쩔수없이 기차에서 내리고 말았다.
96.
성대모사를 잘하기위해선 마음가짐이 우선 중요하다. 그것은 바로 “이 우주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으며 아무 관찰자도 없다. 혹시 있다고 한들 그것은 의식이 없는 미물이며, 혹여 그것이 니가 아는 인간이라도 그것은 그져 환영에 불과하다. 이곳이 어디든 관계없다. 내가 서있는 여기는 무대. 그들은 그 밖에 있다. 못웃긴다 한들 살해 당하지 않는다. 나는 안전하다. 내가 제일 잘한다. 내가 제일 잘났다. 저것들은 모두 개돼지 병신들이다.” 이런 마인드다. 무대공포증이 있는 나에겐 꼭 필요한 마법이기도 하다.
횡단보도를 건너며 한무리의 동료들에게 성대모사로 그들을 꺄르르꺄르르하게 만들고있다. 성대모사의 대상은 다름아닌 함께 걷고 있는 신진이다. 이녀석의 성대모사는 난이도 최하지만 특유의 억지스런(사실 엘리트주의지만) 대충대충 에이~그냥 그거그거 대충…. 하는 말투는 그 뿌리에 있는 건방진 자아까지 알아채야 복사를 할수있는법이다. 녀석은 꿈속에서도 나를 긴장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언제 삐질지는 알고있다. 따라서 적당히 일이야기로 넘어갔다. 게임물리엔진을 통해서 영화의 장면을 통째로 만드는 건 이었는데 사실 별로 중요한것도 아니다. 한두명씩 헤어지고 단둘이 남아도 격식을 차리는 관계로서 그져 하는 그런 이야기다. 하지만 지하철역에서 헤어지며 “어어 잘되면 우리 셋이 어디 배낭여행이라도 가자” 라고 신진이가 뜻밖의 말을하길래 “오 진심? 야 임마 근데 배낭여행이뭐냐 쪼잔하게… 많이 벌어서 리무진 타고 사막이나 가자. 별보러.” 허허허 특유의 사사삭 사라지는 효과음과 함께 빠이빠이를 했다. 근 미래의 주안같았다. 붉은색 노을과 노랑색 반사가 극단적인 연두색을 만드는 그런 대비가 높은 배경에 손을 올려 빛을 가리고 인사를 했던것 같다.
<꿈을 꾸는 시간을 잴수 있다면 현실에서는 매우 짧은 순간일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옮겨 적기에는 하루도 부족할것같다. 꿈을 꾼다는것은 조판을 짜듯, 3차원 그리고 시간까지 통째로 한판을 만들어, 그대로 찍는듯하다. 따라서 이것을 실체의 시공간으로 실타래처럼 뽑는다면 이렇게나 한도 끝도 없어지는 것이겠지.>
95.
태국 특유의 예술적 병맛 광고 혹은 슬랩스틱 같은 원초적이면서도 자연스러운 웃음에 대한 영화를 찍고있다. 뭘 어떻게 해야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거대한 나무 막대를 들고 배우들이 서로의 머리를 때리고 연극무대로 짜여진 세트장을, 막대를 사용해 거의 날아다니고 있다. 무협영화 인것 같다.
사실 이 이상은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한참을 생각했는데 그 때문에 잠이깨어 다른 기억마저 잃을까, 되는데로 시간을 거꾸로해서 기록해보았다. 거꾸로라는 말은 의미없다. 사실 다시 생각해봐도 꿈은 시간과 관계없다. 애브리씽 에브리웨어 엣원스. 음 딱 이게 맞다. 물리학적으로도 맞다. 지난번에는 폰으로 적었더니 오타때문에 무슨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더라. 그래서 이번엔 수고를 무릅쓰고 노트북으로 옮겨본다. 감기가 심해서 하루종일 누워만 있었다.
공기중에 0.1%만 포함되어있어 자칫하다간 사라지는 묘한 계절의 냄새가 있다.
그 소중한 감각을 우리는 기억하고 표현하기 위해 지금부터 나머지 계절을 모두 쓸 수 있어야한다.
무시해도 돼는 설레임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온마음을 바쳐 꾸었던 꿈처럼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