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은 잉여 시간의 플렉스라는 말을 들었다.
동감한다. 이런 쓸데없는것을 하는데 이렇게 공을 들이고, 시간을 쓴다고? 라는 무의식의 느낌말이다. 사냥을 나가지도 않고 나약하게 부족의 생존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서 동굴에 필요이상의 섬세한 그림이나 그리며 한량 짓거리나 했음에도 질기게 멸종하지 않은 우리안의 미술이라는 유전자. 그것이 알려주는 무쓸모의 행위는 한량에 대한 동경이기도하고 여성의 따뜻한 젓가슴만큼이나 뭐어때 괸찮아보듬어주는 풍요로움, 정서적 여유를 불러일으키는 뭐 그런거라고 본다. 결국 지금까지도 이 최대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그림일수록 그것이 예술의 정수라고 믿는다. 하지만 막상 쓸모를 버린다는게 쉽지 않을 뿐더러 시간을 플렉스한다는건 프로작가의 삶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에겐 완전히 그 의미를 이해할수있는 부분이면서도 동시에 쉽지 않은 일이다. 밸런스를 맞춰 짜내야할 숙제이다.
대략 하루에 2시간정도를 온전히 쓸수있는것 같다. 사실 시간이 점프해서 8시간 정도 지난적도 있지만 체력의 한계로 이렇게 시간이 휙 없어지면 아찔하고 무섭기도하다. 잠을 못자는건 여로모로 마이너스니까.
어떻게든 그것마저 가능할때의 이야기고 충분히 큰 캔버스를 채우기엔 부족한 시간이다. 어차피 디테일보다는 다른것에 관심이 있으니 작은 스케치북정도로 만족한다. 두번이나 같은 그림을 그리는것은 흥미가떨어진다거나 하는 등의 이유로 못한다. 그러니까 한호흡으로 쭉 그리되 완벽보다 중요한건 어떻게든 완성해야한다는 거다.
처음잡아보는 도구인 색연필을 연습해봤다. 당췌 채도와 명도는 컨트롤이 안돼고, 연필을 깍아 깔끔하게 그리는것은 그리는중엔 무의식적으로 그냥 무시해버리는것 같다. 보기좋은 그림을 그리는게 목표가 아니니까말이다. 대비나 어두운면의 묘사, 덩어리감은 한계가 있는것 같다. 혼합재료로 표현하면 그만이긴한데 좁은 책상에서 후다닥 준비해서 그리기엔 이만한 재료도 없긴하다. 준비된 녀석이라는 매력이있다.
일부러 거친 종이를 골랐다. 특유의 맹한 느낌을 강조해보고 싶었다. 작은 사이즈에서 질감은 묘사를 대신해 주기도 하니까. 꼼꼼하게 잘 그리는것 보다 떠오른걸 어떻게든 그려보고 맹하게 볼수있게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리고나서 이 일기처럼 외부에 올려보는거다.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 참고해보고, 없다고 해도 스스로 헛웃음 나오는 이 오락가락하는 허접함을 받아들이는거다. 고작 이정도로 남의 시간을 뺏앗는것이 창피하지만 언제까지나 표현하지않은 가능성만 머리속에 그릴수는 없기 때문이다. 뭔가 얻어내기 전까진 이 오글거림은 참을 만하다.
걔속 다르게 해보는거다. 아주작게 그리고 드물게 얻어내는 힌트들이 있다. 우습게도 그것은 ‘효율’일경우도 꾀있다. 재료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그때문에 그리기전 계획의 시간이 필요해진다. 이는 무척 즐거운 일인데, 다른 일을 하다가도 문득 어떤 돌파구같은 장기의 다음수가 생각날때가 있다. 남몰래 짧은 스케치로 과연 어떤지 테스트를 해본다. 무리하지 않고 즐거운 일로 만들기위해 순수한 장기말의 이동외에는 최대한 버린다. 우연이 있다면 기꺼이 받아들이되 영감에 바닥이 보이면 억지로 뭔가 사족만은 붙이지 말자. 오늘은 거기까지인거다.
재료와 친해지고 민낯을 보는 두려움을 없애고 굳어버린 표현력을 위해 매일 운동한다는 기분으로 그리자. 최대한 다음을 위한 씨앗을 뿌려보자. 그리고 이 산만하고 맹한것들이 어디로 가지를 뻗치는지 지켜보자.
나도 아니고 어떤 목적은 더더욱 아니고 자위도 아닌, 그림자체가 그림을 그리게 최대한 내버려 둬 보자. 기술이있다면 버리자. 그림에 내가 있다면 멈추자. 최대한 버리자.
그냥 순수한 에너지를 에너지로 옮겨보는거다.
원래 dna써있다. 이 미술노동자의 굳은살은 특히나 열심히 걷어내서 아이처럼 자유롭게 뛰놀게하자.
아이들의 시간은 느리게 흘러간다.
지금의 시간을 플렉스할 수 없다면 아이처럼 그리자.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