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에 수렴할만큼 가까운이유로 그만큼의 큰상처를 주고 받는 경우가 있다.
가까움에 그런 단점이 있는가 하면, 가까운만큼 서로의 상처를 금방 알아차리고, 금새 봉합해줄 수 있는것 또한 가깝기 때문에 가능하리라.
따라서 상처를 제때에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은 치명적인 실수일것이다.
최근에 나는 너무나 큰 상처를 받은 모양이다. 아마 회복하기힘들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내가 상대에게 이미 너무 많은 상처를 줬으며, 그 상처를 알아차리지도 못한 탓이기에 따저 물을수도 없는 노릇이다.
신뢰에대한 문제였다.
지난 몇번의 큰 실패의 핵심은 신뢰였다. 처음에는 지금처럼 남탓을하였지만, 돌이켜봤을때 상대가 신뢰를 져버릴수밖에 없던 이유는 대부분 나에게서 비롯되었다.
가슴이 너무나 아프다. 무수히 작은 대화로 신뢰가 쌓이는법이다. 단어와 단어사이를 건너뛰어도 오해할일 없이 눈치를 채는것도 수많은 대화속에서 서로의 맥락을 이해할수있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화술이, 문법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서로에대한 신뢰가 이미 심각하게 훼손되었기 때문이라는것을 문뜩 알게되었다.
필요한것을 주고받는 단순한 관계, 외부에게서 또한 내부에게서 불편한 감정을 읽을 필요 없는 온전한 감정적 휴식, 재봉틀과 같은 단순한 노동처럼 … 느끼고있는 고통과 반대되는 행동은 치유의 과정으로서 기능할수있을것이다.
내가 초례한 불편함때문에 대화가 불가능할 만큼 신뢰가 무너져있었다.
간단한 대화조차 편하지 않거나 오류 투성이가 되었다면, 중요한일에서의 유격은 심각한 재난을 초래할수있을것이다.
신뢰에대한 충분한 트라우마가있다. 모든것을 가능하게했던 그 힘과 모든것을 무너뜨리던 그 힘. 누군가의 탓이라고 사과하여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가만, 나는 지금 투정하는 소설을 쓰는걸까? 그렇지않다면 피해망상 탓으로 넘기고 미루어 놓으면 그만일까…
인정을 먼저 해야한다. 그리고 다시 신뢰를 쌓아가기의해 노력해야한다
무너진 신뢰가 회복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고한다. 헛된 노력이라도 해보자. 그러다보면 각자 새로운 시작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더라도 아쉬운 작별이 되진않을것이다.
각오가 되어있다. 무엇이든 옳은 선택, 결정을 할테니 … 사실 결정은 오래전 내려져있으나, 충분한 배려를 하느라 그에게 버티기 힘든 고통만 쌓여가는 중일지도 모른다.
겹치지않는 업무를 독점하고있는 이유외, 여러 다른 이유가 있겠지만 그것때문에 조직전체, 삶의 중요한것들을 위협함을 묵인, 양보 해서는 안될것이다.
해결할 시간이없다… 점점더 바빠지고 대화할 기회또한 적어질것이다. 기회와 삶또한 길지않다.
사명을 다할것이다. 위협은 피해야한다.
나에게도 휴식이 필요하다. 나에게도 상처가 아물 시간과 치료가 필요하다. 이대로의 병들고 무너진 몸과 마음으로는 자신이 없다. 주님께 순명하기로 하였으니 나는 시간이 갈수록 좋아질것이라는 확신이 있으나 나를 점차 대신할 대안이 있어야한다.
스스로 이일까지 해내는것이 아곳에서의 내 사명일것 같다. 이것이 결론인것같다. 적어도 나에게는 말이다.
그에게도 단호한 결정을 내릴수있는 용기를 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