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가면 분명 나를 아껴주는 친구가있다.
매번 손을 벌려 기름값을 빌려달라고 하기 어렵다. 아무일도 아닐지 모른다. 출근하기위해 그런거니 그 정도는 문제가 되지 않을꺼다.
기보만기로인해 필요한 돈을 더 빌릴수도 있을꺼다. 하지만 빌어먹을 현실에서 나는 손벌리는것 외에 할수있는 일이 없다. 비참한 기분이든다. 하루쯤 내가 사라져도 아무일 없을꺼다. 오히려 불편한 사람이 없는편이 좋을지도 모른다. 아니 완전히 없어져도 잘 살아낼 사람이라고 믿는다. 단지 내 역할이 이렇게 하찮고 오히려 짐이 된다는점이 괴로울따름이다.
어머니도, 나를 좋아해줬던 지호형도, 함께 그림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션도 다 죽었다. 나에게 ‘넌 그림이나 그려’ 라고 해줬던 사람이다. 현실에서 살기위해 이렇게해라 저렇게 해라 말하지 않고 그냥 넌 그림리나 그려라고, 괸찮아 라고 해준 사람들이다. 하지만 다시는 그런 말을 들을 수 없다. 그래 그냥 아이처럼 칭얼대는 거다. 약기운이 돌면 다시 살아나갈수 있을꺼다. 돈을 빌려달라고 말할 수 있게될꺼다.
잠을 자고 일어나면 좀 나아질꺼라고 생각했다.
나는 국민대에서 3학년때 중퇴를 했다. 학점은 쓰래기였고 내 전공에는 애초에 뜻이 1도 없었다. 그래서 잡지사에서 삽화를 그리는 일을 하다가, 선배의 소개로 게임회사에 들어가게되면서 학교는 때려 치웠다. 지금에야 여기저기 석박사가된 친구들이 대학에 초대해 강의를 시키지만 대학에 선 나를 보면, 자격도 없고 잘난 녀석들 사이에서 평생 생각하지도 않았던 주눅이라는 감정이 들고만다. (그들은 나를 서류상 강의결격사유가 없도록 진땀을 뺀다.)
사실 후회가 된다. 학점이라도 따서 졸업이든 진학이든 했다면 나의 여러 자격지심중에 얼마간은 없앨수 있었을텐데. 당시의 내 정신 상태를 의사에게 알렸다면 지금 오늘 같은 시간을 조금 덜 보낼 수 있었을텐데… 온라인 외에는 누구에게도 아무말도 없이 몇년을 방에서 보냈다. 그때의 나는 하루종일 잠을 잤다. 어느날 눈을 떠보면 할머니는 내 머리맛에 칼을 들고 굿을 하고 어머니는 기도원에 끌고 다니셨다. 매일 하루만 더자고, 하루만 더 꿈을 꾸고 그 다음날 자살을 할 생각이었다.
지금은 교수가 되고 신부가 되고 자리를 잡고 번듯하게 사회안에서 살아가는 그때의 친구들은 하나도 부럽지 않았다. 그들의 달란트였던 하나하나의 성실함과 성취는 내게 없었고 내게 없으니 더욱더 그런것에 관심이 없었다. 27살즈음까지는 꼭 없어져야갰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때 자살을 하지 못한 이유는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서 였다. 나보다 더 불행한 사람. 나보다 더 자신을 학대하는 사람. 나를 닮았던 사람이다. 그녀를 지켜주려고 매일 저녁에는 세상으로 나왔다. 이해할수없는 이야기를 하는 그녀주변의 사람들과 매일 싸움을 했다. 어차피 죽을 생각이었으니 초라한 내 주먹이라도 그들에게 이길때가 많았다. 이빨을 다 부러뜨리고 40이 넘은 중년의 아저씨의 번듯한 양복도 온통 피로물들게 해줬다. 어느날 사고가 났고 그녀는 아이가됐다. 전과 다르게 이유없이 해맑게 웃는 얼굴이 나는 좋았다. 끝까지 지켜주겠노라 자신과 약속했다.
그리고 지금. 그 모든 과거의 상처들을 다시 꺼내어 나에게 쏟아 붇는 모습의 그녀는 안타깝고 고통스럽다. 나는 20대의 분노에서 스스로 기어나왔음에도 결국 아직 그안에 갖혀있는 기분이든다.
사랑하는 딸에게도 매번 상처가될 지난이야기가 아무렇지 않게 날것으로 전달되는것이 너무나 가슴아프다. 딸에게 나는 우상이었을텐데 여러모로 실망스러운 모습이 누적되어 결국 본인의 상처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빛과 어두움이 누구에게나 있는것은 잘알고있다. 그럼으로서 우리는 완벽한 형상이 된다. 그것을 관찰자의 시점으로 볼수있게된다면, 부모의 명암을 자신과 한덩어리가 아닌, 객관적인 타인으로 볼수있게된다면 아이는 그때 어른이 된다고 한다. 아이 자신과 드디어 떨어져 똑같은 세상의 물체가 되는 시점이다. 세상과 자신이 구분되는 동심과의 이별이다. 부모인 나는 어머니가 해주셨던것과 같이 그 동심의 시간을 최대한 길게 선물해주고 싶었던것 뿐이다. 깊은 어두움으로 참혹하게 선명한 세상의 민낯을 아직 보지 않았으면 하는것 뿐이었다.
어제는 그것이 안타까웠다.
남이 싸놓은 똥을 굳이 똥싼 사람에게 보여줄필요는 없다. 오직 여기에서만 솔직한 이 병신이 싼 똥을 당신이 본다고해서, 당신이 그 누구라도 이똥을 아는척하지 말았으면한다. 그냥 자신의 삶에 빗대어 더 나은 삶을 살기를 기도할테니 나에겐 아무말도 하지 말았으면 한다. 비밀일기가 아닌 보여지는 일기를 쓰는것은 아직 어떤 원리인지 잘 모르겠지만 나에겐 스스로의 위안이다. 소중한 곳이다. 누군가 이글을 읽고 이것에대해 나에게 말을 건다면, 난 다시는 이 자신을 향한 위로의 행위를 하지 못하게 될지 모른다. 글을 쓸때 자유롭지 못하게 될것같다. 나를 조금이라도 위한다면 모른척 해줘라.
생각만큼 난 머저리는 아니다.
그저 누군가 따뜻한 마음으로 읽고 이해해줄거라는 막연한 믿음으로 그 상상만으로 힘을 얻는것 뿐이다.
그러니 기도안에서 아야기하자.
당신 또한 늘 무한한 가치가있고 사랑받을 충분한 이유가 있는 좋은 사람이다.
우리는 이미 그것을 잘 알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