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야, 이건 100%야.”
혼잣말처럼 뱉었지만, 묵직한 저음에 주변이 조용해진다. 영찬은 그제야 사람들의 눈을 하나하나 맞추며 입을 연다.
“에이, 다들 왜 이렇게 순진해요? 이건 빼박이라니까요.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요. 홍대 ‘카미야’? 거기 지금 예약 대기만 3개월이에요. 저도 전 여친이랑 가려다 실패했거든요. 근데 그 교수님이 효정이랑 거길 갔다? 심지어 주말에 ‘그냥 가볍게’ 툭 가자고 해서 들어갔다? 하!”
영찬이 상체를 테이블 쪽으로 기울인다. 확신에 찬 눈빛이다.
“남자가, 그것도 교수가, 자기보다 10살이나 어린 후배에게 그정도로 세.심.한 공을 들인다? 그건요, 단순히 밥 먹자는 게 아니죠. 그리고 뭐 효정이가 아무리 그래도 눈치 없이 그런델 따라갈 아이입니까? 자주 밥도 먹었다면서요. 그게 그냥 편한 사이라고해서 그렇게 만나는건… 에이 아니에요. 둘다 마음이 있고 진행중이에요. 바로 결론을 내면 이건 그냥 청첩장 엔딩이에요.”
회식자리의 화재가 이 두 남녀의 이야기로 좁혀진지 벌써 오래다.
‘썸이다’, ‘아니다’ 각자의 의견이 분분한와중에 영찬은 검지 손가락을 들어올려 사람들의 시점이 모인 허공에 내밀었다.
“노노노노 확실해 이건” 이라며 고개를 돌리고 더이상 듣기도 싫다는 듯 눈을 감아 버렸다.
(암전)
인파가 북적이는 홍대 거리. 교수는 효정이 사람들에게 치이지 않도록 한 손으로 그녀의 등 뒤를 가드하며 걷는다.
“효정아, 배고프지? 뭐 먹고 싶은거라도 있니?”
“네? 교수님, 근데 식당들이 다들 자리가 없네요.”
교수가 효정이의 어깨를 가볍게 잡아 방향을 틀며 말한다.
“저기 보이지? 카.미.야”
라멘집 ‘카미야’ 앞. 웨이팅 줄이 끝도 없이 늘어서 있다. 한발 늦은 커플들이 연신 둘러 보다가 포기하고 돌아가는데, 교수는 보란 듯이 입구로 직진한다. 직원이 막아서려 하자, 교수가 휴대폰 화면을 짧게 보여준다. 직원의 눈이 휘둥그레지며 고개를 90도로 숙인다.
“아! 교수님, 오셨습니까. VIP 룸 준비해뒀습니다.”
길게 줄 선 사람들의 부러운 시선이 쏟아진다. 교수는 그 시선을 즐기며 한걸음 뒤에서 따라온 효정을 돌아본다.
“뭐해? 추우니까 얼른 들어가자.”
효정은 놀란 토끼 눈으로 계단을 오르는 교수를 올려다본다.
“어머, 교수님… 예약 몇 달 걸린다는 곳을 어떻게…”
교수는 기다렸다는듯이 만족한 웃음을 참지 못하며 대답한다.
“그럼 뭐 내가 이정도 준비도 안했을까봐? 몇달전에 너 얘기했었잖아 얼마나 맛있는지 궁금하다며”
(컷)
영찬의 이야기가 급격히 진부한 전개로 진행됬는지 영선이 말을 가로챈다.
“어이어이! 그양반 40넘도록 모태솔로야. 그런 말주변이 있으면 벌써 장가를 갔어도 몇번을 갔겠다야.”
영선이 말을 이었다.
“일단 그 교수님 너 본적없지? 넌 효정이만 알꺼아냐?”
영찬이 당연한듯 짧게대답한다.
“그렇죠.”
남자 교수와 같은 학교에서 수업하고 있는 영선은 무척 자신있는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말하기 시작한다.
“승수 교수는 너처럼 알파메일이 아니에요~. 야. 그사람 여자 앞에서 한~마디도 못해~. 자주 만난다고 하는데 안봐도 비디오야. 쩔쩔매면서 그냥 밥이나 먹는거지, 사귀기는 커녕 썸도 아니야 그냥 맛집투어 하는 친구. 마음이 있던 없던 안돼 연애까지 갈수없다에 한표!”
영찬이 질수없다며 받아친다.
“일년 넘게 휴일마다 밥을 같이 먹었다면서요. 이미 그정도면…”
영선이 승리를 예감한듯 싱긋 웃으며 말한다.
“영찬아 넌 모르겠지. 연애에서 ‘을’인 적이 없어서…”
동료들이 한순간 모두 깔깔대며 웃었다.
영찬은 호구의 마음을 아는듯 모르는듯 다시한번 자기생각을 말하기 시작한다.
(암전)
“효정아, 이번 논문 힘들지? 내가 다 알아. 랩실 사람들 눈치 볼 거 없어. 내가 구현해서 정리해 줄게.”
“네? 아니에요, 저는 그냥…”
“이거 다 해논거 있어서 그래, 그리고 이 논문 말고도 앞으로 계속 노예 할꺼아냐. 앞으로 더 잘 챙겨줄께. 그리고 이제 주변 눈치도 있으니 알려야하지 않을까 우리..사이?”
교수가 테이블 위로 손을 뻗어 효정의 손을 잡으려는 순간.
(컷)
이번에는 미경이 이런 장면은 참을 수 없다는듯 말을 끊는다.
“아… 이건 아니에요.”
순간 모두 미경의 다음말에 귀를 기울이느라 조용해 진다.
“제가 실은 지난 주말에 효정이를 만나고 왔거든요.”
조용해진 동료들 모두 우왓하며 탄성을 지르고 박수까지 치기 시작한다. 줄곧 듣기만 하던 미경의 얼굴이 술때문인지, 모두가 주목한 탓인지 새빨개져서는 말을 계속 이었다.
“잠깐만요. 시선이 조금 부담스러운데요. 제가 효정이랑 그렇게 친하지는 않거든요? 알다시피 전 친구가 한명인데 그 친구가 효정이는 아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효정과 가장 가까운 사람은 미경이다. 다들 침묵으로 미경의 다음 이야기를 독촉한다.
“제가 사귀는지 확인할려고 만난건 아니었구요. 안그래도 승수 교수님? 이름 맞죠? 그분이랑 썸타는것같다는 소문은 있지만 ‘진짜야?’ 라고 물어볼만큼 친하진 않아요. 지난번에 얘기한것 처럼 그러니까 가볍게 떠볼려고 제가 ‘남소 한번 해줄까’ 물어봤죠. 그러니까 영찬님을 소개해 주려한다고…”
다들 알파메일 영찬의 놀란 눈을 보고 박장대소를 한다. 영찬도 순간 상황을 이해하고 물어본다.
“하하 저 그렇게 써먹어도 괸찮아요 근데 효정이 저 알텐데? 모르나?”
“네 누군지 안다고 해서 실패”
미경이 애매하게 말을 끝내버리는바람에 영찬에게는 갑자기 찾아온 의문의 1패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모두들 미경의 다음이야기를 더 궁금해했다.
“아무튼 이런 저런 이야기하는 중에 슬쩍 슬쩍 주말엔 뭐하냐, 맛집 여기 가봤냐 물어봤었는데요. 승수 교수님 이야기는 전~혀 안나오던데요? 완전 아무런 언급이 없었어요. 그래서 저는 얘가 정말 특별한 생각이 없구나 라고 느꼈어요.”
미경은 잠시 멈췄다가 무언가 생각난듯 이어서말했다.
“아, 그런데 이상한게 있었어요. 효정이가 저에게 ‘요즘 영선 교수님이 내 이야기를 하고 다닌다며?’ 하고 물어봤어요. 잘 모르겠다고 했지만…”
여기까지 말하자 사람들은 일제히 반짝이는 눈으로 영선을 바라보았다. 영선이 말한다.
“어? 내가? 그랬나?”
이후의 영선의 말을 옮기자면 학교에서 일주일에 한번씩 만나는 승수교수와 자주 이야기를 나눈다고 한다. ‘주말에 효정이랑 맛집에 같이가죠. 일년쯤 전부터 그래요’ 라며 효정에 대해서는 아주 덤덤하게 이야기했다고한다, 또한 영선에게있어 효정은 학부 학생이었고 이후에 효정이 진학한 대학원이 승수 교수의 연구실이었기 때문에 승수교수와 근황을 나눌때에는 효정에 대한 안부도 함께 이야기하게 되는 원리다.
승수와 효정 둘다 만나본적이 없는 백선은 아까부터 뭐라 계속 주장하였으나 목소리가 들리지 않다가, 이번에는 확신을 얻었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말했다.
“효정이는 영선교수가 자기에대해 말하고 다닌다는걸 누구에게서 들은거지? 금석교수인가?”
영찬이 탁자를 치며 말한다.
“누구긴 누구에요. 승수교수님한테 들었겠죠! 가뜩이나 이제 공개연애를 해야하나 하던차에 승수교수가 효정이에게 말했겠죠 ‘요즘 영선교수가 우리 얘길 자꾸하더라’ 이렇게요. 그둘이 민감하게 이런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효정이의 귀에 들어갈수있는 말이 아니죠”
백선도 가세한다.
“그래 내말이. 영선말대로 금석교수가 아니라면 지금이야기는 승수교수 본인 밖에는 없어. 그리고 왜 효정은 미경에게 뜬금없이 영선교수가 자기 이야기를 하고다니냐고 물어보지? 게다가 ‘자기이야기’라는건 승수교수와의 관계라는 뉘앙스잖아”
모두의 머리위에 엉클어진 실타래 아이콘이 나타난다.
“아 머리아파, 일단 한잔씩 마시죠. 건배”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