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이런영화를 감상하기 위해선 여러 여건이 충족되어야한다.
- 시간, 정신적 여유
- 볼 영화가 없음 (미디어 소비에 있어서도 여유가 필요)
- 담배
사실 1번은 애매한 상황이지만, 개인적으로 중요한 -이렇게 영화를 볼 수 있게되는- 상황을 맞이하는 원리에 대해 메모하고 싶다.
빡센 하루, 아니 24시간 이었다.
일요일 아침9시부터 성당 > 성가대연습 > 11시 교중 미사 > 신부님과 식사 > 집에서 코드정리 > 꼬마 프로그래머친구 픽업 > 오후3시 스타필드 고양 현장 이동 > 작업, 멘붕, 개빡침 > 승질나서 밤 10시에 나옴 > 분당 사무실로 이동 > 오류 수정해서 현장 원격 설치 > 집으로 이동 > 디버깅 > 대충 일단 급한것 끝 (아침 7시) > 영화 감상
인천 끝자락 부터 일산, 분당, 그리고 집까지 커다란 원을 그리고 하루가 끝났다. 스타필드 고양에 ‘원더빌리지’라고하는 프로젝트때문이다. 공간가득 영상과 게임을 프로젝터로 뿌리고, LiDAR와 KINECT로 인터렉션할 수 있는 전시라고 해야할까? 아무튼 여기에 우리 작품(?) 몇개가 참여하게 되었다. 이런 현장이란곳은 누구도 예상할수없는 온갖변수들이 존재하는데, 이를태면 시공, 운영, 하드웨어팀과의 소통오류, 상식오류, 건물주의 갑질 깉은거다. 서로가 서로에게 밀접해있어 어깨로 밀리다보니 인류애가 파사삭 부서지는 경우도 생기기 나름이다. 타인의 일에대해 이해도가 없으면 손쉽게 간단한일이라고 정의해 버리는 결과에 따른 빡침이었다.
사무실로 돌아가는길에 너무 화가나서 소화도안돼고, 크게 틀어 놓은 음악도 들리지않았다. 들어가서 재빠르게 처리해서 피곤에 정신이 먹히기전에는 꼭 탈출할 계획이았다. 하지만 이또한 계획대로 되지않아 밤새 씨발씨발 욕을 해댔다.
새벽늦게 아몰라 하고 퇴근을 했다. 우울증약과 수면제가 집에 있기때문에 또, 샤워를 하고싶어 참을 수가 없었다.
다음날,
사실 지금은 영화에서처럼 사선으로 누운 햇살과 잔잔한 바람이드는 베란다 샷시에 앉아있다. 현장에가서 작업을 해야하지만 인터넷이 안돼는 이유로, 사무실에도, 현장에도 가지 못하고 집에서 남몰래 여유를 부리고 있다. 일이야 사실 어느정도는 끝을냈다. 어제 보다가 잠이든 이 영화를 마저보고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고 있자니, 참 오랜만에 살만한 기분이 들어서 ‘너 왜 여깄어?’ 라는 표정으로 쫄랑쫄랑 따라다니는 달이에게 온몸을 부비며 혼잣말을 하게 된다.
달아 다 괜찮아. 아무것도 아니야. 은행에서 돈달라고 난리처도, 담배살돈이 없어도 괜찮아. 난 미니멀리스트니까. 하하. 달이의 퉁퉁한 옆구리살에 볼을 부비고 있자니 어색한 녀석의 표정과는 상관없이 포근한 꼬순내가 나를 받아안아 편안하게해준다.
이런 슬로우무비는 한장면 한장면 느긋하게, 왕사탕을 입에 물고있듯이 천천히 스며드는 달콤함을 느끼면됀다. 콱 깨물어서 부숴먹으면 안됀다. 영화속 이야기도, 3인칭 카메라처럼 멀찌감치 들으면 그만이다. 잠시 우유를 마시느라 영화를 멈추지 않아도 됀다.
발등으로 받았더니 너울너울 그림자로 간지럽히는 햇살처럼, 영화의 여운을 담배연기로 흘려보내는 이 기분. 이 모든 것이 영화감상에 포한된 한 과정인거다.
제목 무코리타는 불교에서 쓰는말로 무량(헤아릴수없을만큼 많음)에 비교하면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니지만,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인생’을 뜻하는 말일거라고 한다. 48분정도라고 하는데, 48분이나 48년이나, 우주의 시간에선 그놈이 그놈일테니 참 재미있는 개념이다. 영화에서는 노을이 지기 시작해, 어두어지기 까지의 시간 무코리타. 새롭게 안 사실은 찰라가 불교용어고 1.6초를 뜻한다고한다. 무척 짧은 순간=찰라라고 하는데, 1.6초면 의외로 긴데? 하하 뭔가 그동안 시간의 개념을 너무 삭막하게 사용하는것은 아닐까? 어제오늘의 바글대던 30무코리타… 뭘 그렇게 시발시발하면 살았나 하하. 좋은 영화는 이렇게 원래 별일 없던 하루를 별일 없도록 치유해준다. 좋은 영화다. 아참 뒤늦게 찾아봤더니 카모메 식당, 안경의 오기가미 나오키 감독이었다. 아 어쩐지! 어쩐지! 어쩐지!!! 그렇다면 추천하는데 주저는없다. 봐라! 반쯤 누워 담배 피면서 봐라. 괜찮다.
그리고 내가 몇번이나 말했던 그 표현, 인생을 우주의시간으로 보면 찰라의 폭죽같다는 그 말을 이 영화에서 눈으로 볼 수 있다.